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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12-16 (일) 12:49 조회 : 88
설교일 : 2018/12/16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눅 3:1-6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누가복음 31-6)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강림 절기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복음서는 세례 요한의 사역이 백성들로 하여금 메시야를 맞이할 준비를 시키려는 것이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혹시 그가 기다리던 메시야가 아닐까?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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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자신이 메시야가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하게 하는 사람임을 분명히 밝힌 바 있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어서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어 보게 하였다. 그 때에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였다.

그는 거절하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하고 그는 고백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시오?"

요한이 대답하였다.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고 말이오." (1:19-23)

 

복음서 기자들은 공통적으로 세례 요한의 이러한 사역이 이미 이사야가 예언했던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누가가 증언한 오늘 본문 말씀도 그 중 하나입니다.

 

요한은 요단 계곡 온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서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1)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2)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해지고, (3)굽은 것은 곧아지고, (4)험한 길은 평탄해져야 할 것이니,

(그러면 주께서 그 길을 통하여 속히 오실 것이요, 주께서 오시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본문 3-6)

 

저는 오늘 이러한 세례 요한의 외침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외침은 2000년 전 유대 광야에서 백성들에게 전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날 우리들을 향한 외침도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강림 절기를 지내면서 우리들이 깊게 묵상해야 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1) 첫 번째, 세례 요한의 외침은 예수가 세상의 모든 왕들보다도 더 크시고 위대하신 분이심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들었을 때에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요? “얼마나 위대하고 크신 왕이 오시기에 저렇게 대단한 준비를 하라고 할까?

그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당시 왕들이 행차할 때면 늘 왕이 행차하는 길을 미리 평탄하게 닦는 것이 당연한 절차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좀 특별했습니다. 왕의 행차를 위한 준비가 너무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1)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2)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해지고, (3)굽은 것은 곧아지고, (4)험한 길은 평탄해져야 할 것이니

 

조금 파인 웅덩이를 메꾸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골짜기를 메우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든 골짜기를 메우라는 것입니다.

조금 높은 곳을 낮게 만들어 길을 평평하게 만들라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산과 언덕을 다 깎아서 평평한 길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헤롯왕이 행차할 때에도 그렇게 대단하게 길을 닦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아마 로마의 황제가 행차를 한다고 해도 그 정도의 대대적인 공사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 대체 어떤 분이 오시기에 그 정도로 준비를 해야 할까 사람들은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헤롯왕보다도, 로마의 황제보다도 더 위대한 왕이란 말인가?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에 대하여 세례 요한은 자신 있게 외칩니다.

 

그렇다. 그 분은 헤롯왕보다도, 로마의 황제보다도 위대하신 분이시다.

세상의 어떤 왕보다도 위대하신 “왕 중의 왕”(King of kings)이시다.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들어 보아라.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Wonderful Counselor), '전능하신 하나님'(Mighty God), '영존하시는 아버지'(Everlasting Father),

'평화의 왕'(Prince of Peace)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9:6-7)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강림 절기에 기다리는 분은 세상의 어떤 위대한 분보다도 더 위대하신 “왕 중 왕”이요, “평화의 왕”이십니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영존하시는 (우리들의) 아버지”이십니다.

 

강림절을 영어로 “Advent”라고 합니다. 영어 사전을 보니 “Advent”라는 말을 잘 설명하는 다른 영어 단어로 “Dawn(여명)”을 소개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명”은 아침 해가 이제 곧 떠오를 것을 알리는 새벽빛입니다. 태양이 세상 사람들이 만든 어떤 빛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듯이, 세례 요한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도 세상의 어떤 왕들이나 높은 사람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에게 지금 그 여명이 비치고 있습니다. 강림절에 우리들이 큰 기대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세례 요한의 외침은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우리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함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 “골짜기가 메워져야”한다는 의미는, 그동안 우리들의 삶에 깊게 패인 곳들, 구멍 난 곳들이 메워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경 주석에 보면, 메워야 할 골짜기들을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도덕적/영적 무관심”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짐으로 그들의 심령에 영적 구멍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는 믿음에 구멍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백성들의 양심에 큰 구멍이 생겨서 도덕적 감각이 둔해졌다는 뜻입니다.

 

Pothole이 많이 생긴 도로를 운전해 보셨지요?

얼마나 위험합니까? 그런 길을 계속 다니다 보면 자동차도 망가지게 되지요. 이런 모든 것들이 다 메워져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듯이, 우리들의 삶에 있는 모든 Pothole들이 다 메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다시 메워져야 할 (회복되어야 할) 골짜기와 구멍들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향한 사랑에 구멍이 생겼습니까? 신앙의 열정이 식어지지는 않았습니까? 기도와 말씀으로 채워져야 할 부분이 아직도 채워지지 않았습니까? 혹시 찬양하는 마음에 구멍이 생기지는 않았습니까? 주님의 오심을 소망하며 준비하는 이 강림절에 우리들의 심령과 삶에 그러한 골짜기와 구멍들이 메워지고 채워지고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 둘째로,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해져야”한다는 의미는, 교만으로 인하여 높아진 우리들의 마음이 다시 낮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산처럼 높이 교만해진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산처럼 높지는 않아도 언덕 정도 높은 교만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다 평평해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져야 합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입니다. 반대로 겸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나의 지식과 경험과 능력을 의지하는 마음이 아니라,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의지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가장 미워하시고, 겸손한 자를 가장 좋아하신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신다.

(야고보서 4:6)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주시며 또 거두시는 기준이 “교만”과 “겸손”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밝은 얼굴로 우리를 대하시고, 우리들이 교만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물리치신다는 말입니다. 교만으로 인하여 높아진 우리들의 마음을 다시 겸손하게 낮추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 셋째로, “굽은 길을 곧게 만들어야”한다는 의미는, 삐뚤어진 우리들의 마음을 바로 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아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삐뚤어진 마음입니다.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왜곡되고 삐뚤어진 마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부정적인 눈으로만 바라보는 마음이 삐뚤어진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아니라, 불평하는 마음이 왜곡된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왜곡되고 삐뚤어진 마음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넓은 마음을 갖지 못하고, 마음을 굳게 닫는 것이 삐뚤어진 마음입니다.

 

이런 굽은 길들을 모두 곧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넓은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넷째로, “험한 길은 평탄해져야”한다는 의미는, 우리들의 삶에 죄로 인하여 험하게 된 곳들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험한 길(Rough Way)은 가는 사람들을 빠지고 넘어지게 하는 길을 말합니다.

진흙으로 가득한 길도 걷기에 험한 길입니다.

이런 길을 가다보면 넘어지기도 쉽습니다. 신발은 물론이고 옷이 다 흙탕물에 젖게 됩니다.

 

죄가 그런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더럽히고, 우리들을 넘어지게 합니다. 또한 주님이 우리들의 삶에 오시는 것을 막는 것도 죄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시지만, 죄는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들의 삶에 임하시게 하려면 우리들의 삶에서 죄를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세례 요한이 백성들로 하여금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게 하면서 회개를 외치고 회개의 세례를 베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서,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그래서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온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에게로 나아가서,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1:4-5)

 

이렇게 철저하게 주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나요? 주님의 오심을 철저하게 준비한 성도들이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혼인잔치를 위하여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의 비유에서 설명하여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삶과 심령을 평탄하고 곧고 깨끗한 길로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은 단순한 권고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임을 명시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해지고, 굽은 것은 곧아지고, 험한 길은 평탄해져야 할 것이니,..

 

이사야는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모든 사람들은 “주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단순히 “영적 구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이 복된 강림 절기에 세상의 어떤 위대한 분보다도 더 위대하신 “왕 중 왕”이요, “평화의 왕”이시고,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영존하시는 (우리들의) 아버지”를 기다리는 큰 기대와 소망과 기쁨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분을 맞을 마음과 삶의 자세를 바로 가다듬는 기간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들의 심령과 삶에 메워져야 할 부분들이 메워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만을 의지하는 겸손한 마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왜곡되고 굽어진 마음들이 곧게 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을 믿으며 주님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삶에 죄로 인하여 추하게 된 모든 것들이 정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오셔서 놀라운 회복의 역사를 일으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강림절을 의미 있게 보내는 성도들의 신앙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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