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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날에 결국 무너진 여리고 성"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11-25 (일) 12:24 조회 : 63
설교일 : 2018/11/25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수 6:1-21, 왕하 5:10-14


“일곱째 날에 결국 무너진 여리고 성”

(여호수아 61-21, 열왕기하 510-14)

 

성경을 읽다 보면 참으로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공통적인 2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이야기이고, 두 번째는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이 낫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 이야기들을 읽을 때마다 성경에 나오는 다른 기적들보다 좀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기적들이 일어난 과정이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엿새 동안 돌 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더 성에 금이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엿새 동안은 여리고 성이 무너질 아무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엿새 동안 여리고 성을 돌면서 백성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온갖 잡다한 생각을 다 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지금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식으로 성을 공격하는 것을 나는 그동안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성벽을 돌 때마다 무슨 무너질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신나서 계속 성벽을 계속하여 돌겠는데... 이건 아무런 효과도 없어 보이는데, 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거야?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저들의 행군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서 말하였다. "언약궤를 메고 서시오.

그리고 일곱 제사장은 제각기 일곱 숫양 뿔 나팔을 들고 주의 궤 앞에 서시오."

또 그는 백성에게 말하였다. "앞으로 나아가거라! 성을 돌아라! 무장한 선발대는

주의 궤 앞에 서서 행군하여라!"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한 대로, 제각기 숫양 뿔 나팔을 든 일곱 제사장은 주 앞에서 행군하며 나팔을 불었고, 주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랐다. 또한 무장한 선발대는 나팔을 부는 제사장들보다 앞서서 나갔고, 후발대는 궤를 따라갔다. 그 동안 제사장들은 계속하여 나팔을 불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명령하였다. "함성을 지르지 말아라. 너희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여라.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말고 있다가, 내가 너희에게 '외쳐라' 하고 명령할 때에, 큰소리로 외쳐라." 이처럼 여호수아는 주의 궤를 메고 성을 한 바퀴 돌게 한 다음에 진에 돌아와서, 그 밤을 진에서 지내게 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여호수아가 일찍 일어났다. 제사장들도 다시 주의 궤를 메었다.

이튿날도 그들은 그 성을 한 바퀴 돌고 진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엿새 동안 이렇게 하였다. (본문 6-14)

 

얼핏 보기에도 그들의 행군 모습은 정말로 “바보들의 행진”같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끝까지 행군을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마지막 일곱 째 날에 백성들의 함성과 함께 한 순간에 성이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드디어 이렛날이 되었다. 그들은 새벽 동이 트자, 일찍 일어나서 전과 같이 성을 돌았는데, 이 날만은 일곱 번을 돌았다.일곱 번째가 되어서,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렇게 명령하였다. "큰소리로 외쳐라! 주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다."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었다. 그 나팔 소리를 듣고서, 백성이 일제히 큰소리로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백성이 일제히 성으로 진격하여 그 성을 점령하였다. (6:15-20)

 

(2)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이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경은 나아만 장군이 선지자 엘리사가 말한 대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자 그의 살결이 어린아이 살결처럼 돌아와 깨끗하게 나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가 요단강 물에서 6번을 목욕할 때까지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한 번 목욕을 할 때마다 피부가 조금씩 나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6번 목욕을 할 때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번 목욕할 때까지 나아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만일 여러분이 나아만과 같은 처지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성경은 나아만 장군이 몹시 급한 성격을 갖고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엘리사는 사환을 시켜서 나아만에게, 요단 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장군의 몸이 다시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이스라엘에 있는 강물보다 좋지 않다는 말이냐? 강에서 씻으려면, 거기에서 씻으면 될 것 아닌가?

우리 나라의 강물에서는 씻기지 않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하고 불평하였다. 그렇게 불평을 하고 나서, 나아만은 발길을 돌이켜, 분을 참지 못하며 떠나갔다. (본문 10-12)

 

그러나 나아만은 지혜로운 자기의 부하의 말을 듣고 마지막 일곱 번까지 목욕을 합니다. 그러자 그 순간 문둥병이 낫게 되었고, 나만 장군의 피부가 어린아이처럼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기적”이라고 하면 “당장에 나타나는”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적을 행하실 때도 있습니다. 급할 때는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에 기적을 행하실 때에 점진적으로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과정 가운데서 우리들에게 순종의 믿음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리는 훈련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두 기적은 얼핏 보기에 마지막에 한 순간에 갑자기 일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6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돈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마지막 일곱째 날 돈 것이 기적을 일으켰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6번 목욕한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마지막 7번째 목욕한 것이 결국 효과를 발휘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들은 한 순간에 일어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선지자 엘리사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인내하였던 나아만 장군의 순종의 결과가 결국에 그러한 기적들을 일으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늘 좋아하고 또 여러 차례 말씀드렸던 “물레방아”의 이미지, 기억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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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원리가 무엇입니까? 물레방아의 각 패인 홈마다 물이 차야합니다.

그러므로 물레방아가 계속해서 돌아가게 하려면 각 홈마다 물을 채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들의 순종이 쌓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리는 인내가 쌓여야 합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쌓여야 합니다. 지금 당장 우리들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지금 드리는 우리들의 기도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기다림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헛된 것이 아님을 일깨워주는

또 하나의 비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물이 어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물은 섭씨 0(화씨 32)에서 업니다. 그것을 빙점(氷點)이라고 합니다.

섭씨 10도의 물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이제 그 물을 얼리기 위해서 온도를 1도씩 낮춥니다. 9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물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5도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물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이제 1도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물이 얼음으로 바뀌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드디어 섭씨 0도가 되었습니다.

물은 그때 비로소 기적과 같이 얼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에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의 대부분은 우리들의 능력으로는 쉽게 해결되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만이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열심히 기도합니다. 당장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당장에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포기합니다. 그리고 더 절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이러한 원리를 깨닫고 순간순간 성령의 뜻에 순종하며 우리들의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뎌야 합니다. 물론 어느 순간에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행해 주시는 대부분의 기적들은 한 순간 한 순간 성령의 뜻에 순종하며 살다보면 나중에 우리도 모르게 이미 우리들의 삶에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자 프로 골프선수 신 지애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갖고 그 기사를 읽었습니다. 운동을 워낙 좋아해 젊은 시절 배드민턴, 볼링 전라남도 대표를 지낸 신 목사는 딸을 낳으면 운동을 시키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합니다. 신 목사는 1999년 지인이 만든 골프 연습장에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인 지애를 데리고 갔다. 지애가 의외로 공을 잘 맞히는 것을 보고 연습장 쿠폰을 그냥 끊어줘 보았다고 합니다. 지애는 2개월 뒤 경험삼아 나가본 전남 도내 골프대회에서 준우승을 했습니다. 이것이 신지애가 골프를 계속하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신 지애에게도 시련과 역경이 있었습니다. 2003년 전남 목포의 이모 집에 가던 어머니와 두 동생이 교통사고로 1년 동안 병원치료를 받다가 어머니는 끝내 숨졌습니다. 당시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던 신 목사의 월급 90만원으로는 병원비조차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자로 일하는 아버지는 병원비 때문에 집을 팔아야 했다고 합니다. 신 지애는 병실 간이침대에서 먹고 자며 1년여 동안 동생들을 돌봤습니다. 그는 “어려움을 겪으니 골프를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어머니를 잃은 신 지애는 아버지, 두 동생과 함께 월 15만 원짜리 사글세방에 살면서 골프를 했습니다. 신 지애에게 골프는 귀족 스포츠가 아니라 처절한 삶이었습니다. 그의 브리티시오픈 우승은 이러한 눈물과 기도의 과정을 거쳐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신지애는 브리티시 우승 후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에게 우승컵을 바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을 그때부터 역전시켜 주셨습니다. 지금 그는 한국 여자프로 골프계의 전설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에게 나타났던 역전의 기적은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수레바퀴를 돌리기 위하여 매 순간마다 그의 삶의 깊게 패인 홈에 물을 가득 채우는 부단한 노력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의 삶에 보석과 같은 얼음을 만들기 위하여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갖고서 그의 삶을 섭씨 0도까지 낮추는 긍정적인 노력을 해 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자가 그에게 묻습니다. “모자에 아주 색다른 핀이 있는데 가만 보니 그 핀에 TT라는 글자가 새겨 있군요. 그 뜻이 무엇입니까?” “예, 그것은 Trust and Try의 약자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라는 뜻이지요. 그러면 처음에는 고전하고 실패해도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역전시켜 주십니다.” 기자가 계속하여 말합니다. “아 그래서 신지애 선수는 경기할 때에도 매번 역전의 멋진 드라마를 펼치시는군요.

 

역전극의 주인공이었던 다윗은 다음과 말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시편 46:10)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Trust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하며 묵묵히 우리들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Trust & Try!" 그래야 우리들의 삶에 하나님께서 멋진 역전극을 연출하여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올해도 1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간절히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제목들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미 이루어진 기도의 제목들도 많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들의 삶에 더 구체적으로 일어나기를 바라며 지금도 기도하고 있는 제목들이 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기도하다가 지치거나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때와 섭리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기도하며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 귀한 일들을 시작하셨고, 또 지금도 은혜로 이루어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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