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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15)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 있느냐?"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11-11 (일) 08:48 조회 : 75
설교일 : 2018/11/11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눅 17:11-19


  예수께서 가라사대

(15)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 있느냐?”

(누가복음 17 11-19)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을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문둥병자 10사람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자기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고쳐 주시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둥병이 나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가고 있었습니다.

제사장에게 가면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만일 정말로 내 몸이 깨끗해진다면, 나를 고쳐주신 예수님께 최고의 감사를 해야지!” “정말로 내 몸이 나아진다면 예수님을 위해서 내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나?” “하나님, 이번에 제 몸을 고쳐 주시면 나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이런 생각들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제사장에게로 가던 도중에 정말로 자신들의 몸이 깨끗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의 문둥병이 낫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들은 빨리 자신들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려고 더 빠른 걸음으로 제사장에게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사람이 제사장에게로 가던 발걸음을 돌이켜서 예수님께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묻습니다. “열 사람이 모두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 그리고는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린 그에게 육신의 병뿐만이 아니라, 영혼의 병도 고쳐 주신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큰 감사의 조건을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본문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몰랐던 나머지 아홉 명은, 비록 그들이 육신의 병은 고침을 받았지만, 영혼의 구원은 받지 못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러 오지 않았던 9명의 고침 받은 문둥병자들도 예수님께 감사한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하지 못했을까요?

 

(1)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은 평소에 감사하는 마음이 무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늘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분. 그분은 항상 남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 병자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 불쌍한 병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그분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는지 모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 대하여 그러한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마치 자녀들이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당연한 것이라고 쉽게 생각해 버릴 때가 있듯이 말입니다. 매일 매일 우리들에게 새로운 하루가 주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걷고 뛸 수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감사를 잊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나에게만 특별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누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착하게 자라주는 것에 대하여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착하게 자라주는 자녀가

내 자녀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본래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시니, 그분이 우리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은 당연한 그분의 성품이라고 여기면서 하나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축복과 은혜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10명의 문둥병자들을 단체로 고쳐 주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문둥병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히 보시고 저들 각자에게 특별하신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나에게 내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특별함을 깨닫고,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10명중에 1명만 감사를 드렸고, 나머지 9명은 감사할 줄 몰랐다는 오늘 본문의 이야기.  비율로 따지면 “9 1”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의 마음은 90%정도가 감사에 무디어져 있고, 단지 10% 정도만 감사에 대하여 우리들의 마음이 열려 있다는 말입니다.

 

고침 받은 10명의 문둥병자들 모두가 예수님께 감사를 드려야 했듯이,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의 모든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의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숨을 쉴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고, 맥박이 뛸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의 대부분은 감사에 대하여 무감각해져 있습니다. 우리들은 아주 가끔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겨우 10% 정도도 되지 않는 마음을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며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매일 매일 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평상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아 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디선가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집에 전기가 들어온다면,

세상에 전기의 혜택 없이 사는 20억이 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당신 집에 수돗물이 나온다면

식수가 없어 고생하는 10억이 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하루 1000원 이상으로 생활하고 있다면,

천원 미만으로 살고 있는 12억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하루 한 끼라도 따뜻한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영양실조로 고통 받는 8억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당신의 몸이 건강하다면,

당신은 이번 주를 넘기지 못할 수 백만 명의 환자들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한 번도 전쟁의 위험이나 수용소의 외로움, 고문의 고통, 굶주림의 쓰라림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러한 고통을 겪으며 사는 수억 명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당신이 은행에, 그리고 지갑에 약간의 돈이 있고, 어딘가 작은 접시에 동전을 모아 놓았다면

당신은 이 세상의 8% 안에 드는 감사해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부자입니다.

 

마땅히 감사하여야 할 것들에 대하여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은 굳어진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토양에서는 행복의 나무가 절대로 자라지 않는 법입니다.

 

(2) 9명의 문둥병자들이 고침을 받고도 감사하지 못하였던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이 처음에 가졌던 간절한 마음을 나중에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외쳤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 그들의 마음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만일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병을 고쳐 주시기만 한다면 예수님께 감사하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고,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해 드릴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맨 처음 가졌던 그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을 고침 받은 후에 저들은 처음에 가졌던 그 마음을 잊어 버렸습니다. 악의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저들의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우리는 앞과 뒤가 다른 저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실 이것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겠노라고 서약까지 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우리는 마치 그 문제가 우연히 해결 된 것처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릴 때가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고, 편안할 때에는 하나님을 잊고 살기 쉬운 것이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 향한 우리들의 마음이 변함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고침을 받은 9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하지 못했던 세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감사를 뒤를 미루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그들의 병을 고쳐 주셨다면, 아마도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당연히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고침을 받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반쯤 길을 가다가 고침을 받은 것 같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얼마나 빨리 식구들이 보고 싶었겠습니까? 얼마나 빨리 제사장에게 자신들의 몸을 보이고, 빨리 법적으로 정상인으로 인정받고 싶었겠습니까?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일들을 먼저 처리하고, 나중에 예수님을 만나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려도 늦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곳에 오래 계시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예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감사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 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침을 받은 즉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드렸던 사마리아 출신의 문둥병자처럼 우리들은 순간순간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마리아출신의 문둥병자가 감사를 통하여 더 큰 축복을 누렸던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께로부터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에게 드리는 감사의 마음을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미루어서도 안 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아껴 두어서는 안 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성도들끼리 서로가 서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나중에 그들에게 감사를 하려하면, 그들은 그 자리에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맨 먼저 해야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종은 칠 때 종이고, 장작은 타오를 때 불이고, 믿음은 감사할 때 믿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깨달을 뿐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 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뜻의 말입니다.

 

평생 감사라는 책에 있는 글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매년 감사 절기가 돌아오면 교인들에게 미리 봉투를 나눠 주고 작정헌금을 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꼭 발표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예배 시간에 차례대로 이름을 호명하다 작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한 장로님이 작정한 헌금 액수를 발표했는데, 그만 30만원 작정한 것을 300만원으로 잘못 읽었던 것이다. 장로님은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 그러나 아무 말 하지 않고 목사님이 발표한 대로 300만원을 감사헌금 했다고 한다.

얼마 뒤 목사님은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후 장로님을 만나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그러자 장로님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목사님, 저는 제가 30만 원짜리 감사인생인 줄 알고 30만원만 헌금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입을 통해 제가 300만 원짜리 감사인생인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사실 주일에 목사님께서 발표하신 것을 듣고 몹시 당황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기도하면서 지난날들을 헤아려 보니, 제 인생은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발표하신 대로 30만 원짜리 감사인생이 아니라, 300만원 아니 그 이상의 감사인생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값진 인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헌금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아홉 명의 무리에 속하여 있습니다.

감사에 무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감사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그것이 괜찮고 옳은 것은 아닙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다수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께 홀로 찾아 온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감사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곧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이고,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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