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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14)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11-04 (일) 12:30 조회 : 38
설교일 : 2018/11/04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마 6:1-6, 16-18


 “예수께서 가라사대”

(14)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1-6, 16-18)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에는 3번씩이나 동일하게 반복되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입니다.

 

네 자선 행위를 숨겨두어라. 그리하면, 남모르게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본문 3-4)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숨어서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리하면 숨어서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본문 6)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낯을 씻어라.

그리하여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말고, 보이지 않게 숨어서 계시는

네 아버지께서 보시게 하여라. 그리하면 남모르게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본문 17-18)

 

자선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금식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들어내려고 자선행위를 하지 말고, 자신의 경건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기도하거나 금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남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하나님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금식하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다 갚아 주실 것이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의 신앙행위들은 다분히 남들에게 보이려는 경향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율법을 많이 읽고 지키는 가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경문 곽(Tefillin)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 술(Tzitzit)을 길게 늘어뜨리고 다녔습니다.

 

경문 곽이란 양피지에다 성경구절들을 적어서 역시 양피지로 만든 성냥갑 크기의 통에다 넣는 것입니다. (작은 상자 안에는 깨알보다 작은 글씨로 바늘로 신명기를 써 놓았음) 어떤 이들은 항상, 어떤 이들은 기도할 때 경문 곽을 이마와 왼팔 윗부분에 묶습니다. 머리로는 항상 율법을 생각하고 왼팔 윗부분에 맞닿는 심장으로는 율법을 사랑하겠다는 표현입니다. 그들이 그것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닌 이유는 남들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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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술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도 신명기 2212절과 민수기 1538-39절의 말씀에 따라 겉옷 옷단 네 곳에다 흰 실과 푸른 실로 꼬은 술을 달고 다니는 것인데, 이것 역시 율법을 명심하라는 표지입니다. 그리고 이 옷 술이 길수록 종교적 신분이 더 높은 것을 나타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남들에게 보임으로써 남들로부터 대접을 받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지적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경문 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그리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장터에서 인사 받기와,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23:5-7)

 

기도할 때는 공공장소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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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도 남들을 구제할 때에도 사람들에게 보이기를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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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그것이 본능이라는 말은 인간에게는 그것이 본래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칭찬과 인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들에게 자신감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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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칭찬과 인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잘 하게 하는 동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것이 칭찬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음과 같은 책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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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을 키울 때에 그들을 마음껏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칭찬해주고 인정해주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남들로부터 받는 칭찬이나 인정에 목말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일을 하는 동기나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의 태도를 비난합니다. 남들로부터 받는 칭찬이나 인정을 받고 높임을 받으려는 것이 그들이 선한 일들을 하는 동기나 이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이긴 하지만, 우리 안에도 “바리새인적”인 것들이 많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콜로라도(Colorado) 주 롱몬트(Longmont)의 갈보리교회에서 21년째 사역하고 있는 톰 허베스톨(Tom Hovestol) 목사가 쓴 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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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처럼 바리새인의 모습이 바로 내 안에, 교회를 다니는 자들 안에, 믿음이 좋다고 일컬어지는 자들 안에 있다는 내용이 책의 주요 내용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받으려는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 하는 것. 분명히 이것은 잘못된 삶의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하여 이것을 가르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가지고 다른 목사님들은 어떤 설교를 했는가를 찾아보다가 특이하고 재미있는 제목을 발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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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도전적인 설교제목이긴 하지만, 본문의 내용을 충격적 요법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Show off(티내다)하지 말라고 꾸중하시는 것이 본문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절대로 칭찬을 받으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받았다”는 의미는 그저 단순히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나중에 하나님께로부터 칭찬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뜻은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고 그 일을 했다면, 사람들에게 칭찬받음으로 그 목적을 이미 이룬 것이니, 나중에 하나님께서 또 칭찬해야 하실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선한 일을 한 동기가 남들에게 칭찬과 높임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함이었다면, 나중에 하나님께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은 본인이 의도하거나 요구(Claim)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고, 사람들로부터 귀중히 여김을 받는 삶”이 바로 그런 삶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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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앙인이 됩시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戀戀: 그립고 애뜻하여 잊지 못함)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수요 예배에 사도행전을 강해하고 있는데, 저는 오직 하나님께만 시선을 맞춘 제자들의 모습에 다시 한 번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두 사람(베드로와 요한)에게 명령하여 의회에서 나가게 한 뒤에, 서로 의논하면서 말하였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소문이 사람들에게 더 퍼지지 못하게, 앞으로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합시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그 두 사람을 불러서,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하였다.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15-20)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물리치시고서, 다윗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그가 내 뜻을 다 행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13;22)

 

언젠가 들었던 예화가 생각납니다. 유명한 음악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은 어느 피아니스트가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기립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주자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의 시선은 한 곳을 집중한 채 그 자리에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시선을 집중한 곳은 그를 지도했던 지도교수였습니다. 그 교수가 드디어 천천히 일어납니다. 그리고는 잘했다고 칭찬하는 싸인을 보냅니다.

그제서야 연주를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지도교수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박수는 잠시 뿐입니다. 그러나 지도교수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은 그의 장래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길 바랍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기에 급급한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라, 조용히 발코니에서 연주를 지켜보았던 지도교수처럼 하늘에서 은밀하게 우리들을 지켜보시며 박수를 보내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성실하게 진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신앙의 경주를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특수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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