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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에 충실하라!"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10-28 (일) 20:20 조회 : 43
설교일 : 2018/10/28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막 7:1-8



 “본질에 충실하라!

(마가복음 71-8)

 

오늘은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501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작년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온 세계의 개신교회가 그 의미를 되새기는 많은 행사들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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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서도 작년 6월에 종교개혁자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많은 은혜를 나누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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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때 받았던 감동들이 가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종교개혁”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Reformation”이란 영어를 한국말로 번역한 것인데, 사실 내용상으로 보자면 “교회개혁” 혹은 “신앙개혁”이란 말이 더 맞을 것입니다.

 

그러면 “Reformation”은 실제로 어떤 Movement였을까요? Reformation은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려했던 개혁운동”이었습니다.

그 당시 교회와 신앙의 모습이 본질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는 세속화 되었고, 신앙은 성경의 본질에서 떠나 미신적인 것들로 가득 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고, 성경의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가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려고 했던 것이“Reformation(“교회개혁” 혹은 “신앙개혁”) 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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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회복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본질”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영어로 “본질적”이란 말은 Essential(기본적인,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핵심적인) Substantial(근본적인, 실질적인)입니다. 그러므로 Reformation은 신앙의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것들을 다시 회복하려는 개혁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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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혼돈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비본질적인 것들”로 인하여 “본질”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잘 설명해 주는 유머가 있습니다.

 

어느 부부가 간식으로 감자를 삶아서 먹으려고 할 때 생긴 일이라고 합니다. 아내는 삶은 감자와 함께 설탕을 가져 왔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말합니다. “여보, 감자는 소금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나는 법인데 왜 설탕을 가져 왔소?” 아내가 대답합니다. “당신네 집은 본래 가난해서 소금을 찍어 먹었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항상 설탕을 찍어서 먹었지요.” 평소에 가난하게 살았던 자신을 늘 아내가 무시한다는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 남편이 화를 벌컥 냅니다. “너거는 배불러서 설탕에 찍어먹고 살았는지 모르겄지만...” 이렇게 시작된 말다툼은 나중엔 자존심 싸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둘은 이혼을 하려고 법정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사연을 다 듣고 난 판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고추장에 찍어먹는데...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우리는 이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 때가 많습니다. 좀 어려운 말로 표현하자면, 비본질적인 문제들 때문에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릴 때가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안타깝게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시험에 들 때가 있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면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로 갈등하다가 시험에 드는 경우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신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비본질적인 문제로 인하여 시험에 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비본질적인 문제로 인하여 가장 중요한 본질인 신앙에서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인하여 본질인 신앙에서 멀리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의 직분과 직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신앙의 본질은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것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당사자도 신앙생활에 큰 시험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신앙생활의 비본질적인 것들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을 것입니다. 이 시간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로 하여금 종종 신앙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그동안 나로 하여금 신앙의 시험을 준 것들은 어떤 것들이었나? 나는 그러한 시험들을 어떻게 극복했나? 또 앞으로 나는 그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에 보면 비본질적인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부정한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고서 예수께 따져 묻습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이 전하여 준 관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이러한 그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본질적인 것)을 버리고, 사람의 관습(비본질적인 것)을 지키고 있다. 이사야가 너희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이 백성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너희는 너희가 물려받은 관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며, 또 이와 같은 일을 많이 한다. (본문 6-8)

 

정결에 관한 율법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무엇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라는 말입니다. 물론 손도 깨끗이 씻어야 하고, 정결한 음식도 먹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겉을 깨끗하게 하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들의 심령과 삶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본질의 중요성에 대하여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가르쳐 주신 적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께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우리 조상은 이 산 위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하는 문제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식보다 내용과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여자여, 나의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 위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닌 데서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것이다.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4:21-24)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잘 분별하는 것은 신앙인들의 일상적인 삶에도 꼭 필요한 지혜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하여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비본질적인 문제들로 고민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고민하며 살아야 하는 문제들은 그러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비본질적인 문제들은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6:31-33)

 

신앙의 본질을 갖기 위하여 비본질적인 모든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는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이것들이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밖의 모든 것(비본질적인 것들)은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인정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오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가지려는 것입니다. (3: 7-9)

 

가정이 가정되기 위해서 비싼 집, 고급차, 크고 좋은 TV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가정을 구성하는 비본질적인 요소들입니다. 가정의 본질은 부부간의 사랑, 자녀에 대한 사랑과 격려, 희생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본질적인 것보다 비본질적인 것들이 더 통하는 가치가 뒤바뀐 시대인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풍토와 시대적인 조류, 그리고 세상적인 가치관들이 사람들의 생각을 흐려놓고 있습니다.

 

본질적인 것들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참 가치 있는 것이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혹시 비본질적인 것에 나의 온 시간과 노력을 기우리고 있지 않은지 잠시 멈추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자세를 돌이켜 보면서 이런 질문들을 해야 합니다. 나는 신앙생활의 본질에 충실한가?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하여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일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나의 유익을 구하기 위함인가? 나의 믿음의 나무에서는 어떤 열매가 맺히고 있는가? 혹시라도 내 안에 있는 믿음의 나무에는 잎사귀만 무성하지는 않는가? 혹시 내 신앙은 습관적인 것은 아닐까? 나의 기도는 진실한가? 나는 성경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무엇보다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는가? 나는 신앙의 본질을 붙들고 있는가? 아니면 신앙의 비본질적인 껍데기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본질을 회복하면 생명이 있습니다. 한때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일으켰던 TV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왜 저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큰 감동을 줄까?”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수들이 노래의 본질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동안 그것에 갈급하였던 것입니다. 요즘 젊은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의 형태가 어떠합니까? 본질적인 노래에 충실하기보다 춤이나 그 외 요소들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에 나오는 가수들은 자기에게 노래가 주어지면 그 노래를 어떻게 소화할까에 온 신경을 씁니다. 그리고 그 노래를 가장 잘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음 하나 하나에 신경을 씁니다. 어떤 악기를 써야 하는지 편곡자와 가수가 함께 고민합니다. 사람들은 “본질에 충실하려는”그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에 충실하니 노래가 살아납니다. 노래에 생명력이 있습니다. 부르는 자나 듣는 자가 모두 감동합니다.

 

본질에 충실한 우리들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썩어 없어질 것들을 얻기 위하여 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나의 귀중한 삶을 다 허비하지 말고, 영원히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지혜로운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본질에 충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우리들의 삶에 생기와 기쁨과 보람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나는 가수다”에 나온 가수들이 충실하게 온 열정을 다하여 노래를 부르고 나면, 온 청중이 일어서서 감동의 박수를 칩니다. 우리들의 삶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의 박수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해 주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들은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렇게 충실한 삶, 복된 삶을 살아가시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우리들에게 본질에 충실하라고 명령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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