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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1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09-23 (일) 11:32 조회 : 88
설교일 : 2018/09/23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마 5:13-16; 행 27:18-26


 “예수께서 가라사대”

(1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

(마태복음 513-16, 사도행전 2718-26)

 

우리는 지난 8번에 걸쳐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함께 묵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은 “산상수훈” 바로 다음에 나오는 가르침입니다.

 

얼핏 보기에 이 둘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묵상해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왜 “산상수훈”바로 뒤에 하셨는지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 사는 성도는 결국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주실 때에 사용하셨던 단어들만 보더라도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주리고 목마른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나를 인하여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당하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고...

 

이러한 성도들의 모습은 마치 안데르센(Andersen)의 동화에 나오는 “미운 오리새끼(The Ugly Duckling)”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실은 백조인데... 모든 오리들로부터 귀중히 여김을 받아야 했었는데... 그러나 함께 사는 오리들로부터 놀림과 비난을 받고 있는 모습.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의를 추구하며 사는 성도들”의 참 모습은 “미운 오리새끼”가 아니라, “백조”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

 

예수님 당시 소금은 금과 같은 가치를 지닌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 가치가 변한 것은 아닙니다. 소금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잘 알려주는 다음과 같은 말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황금” “소금” “지금”이다.

 

요즘은 소금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그 가치를 잘 모르지만, 옛날에는 소금의 가치가 굉장했습니다. 한국만 예를 들더라도, 1907년에야 인천 주안 염전에서 최초의 천일염이 제조되었고, 소금의 자급자족이 이루어진 것이 1955년이고, 소금의 전매제도가 해제된 것은 1962년이라고 합니다. 역사 드라마를 보면 가끔 소금 밀거래에 관한 것들이 나오는데, 옛날에는 소금이 그렇게 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로마 초기에는 소금이 화폐의 역할을 했고, 관리나 군인들에게 주는 급료를 소금으로 지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월급이라는 영어 단어 “Salary”가 소금이란 단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소금에 얽힌 여러 가지 자료들을 찾다보니 세계사를 나라간의 소금 확보전쟁이란 관점에서 본 재미난 제목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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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이 얼마나 인간사에 중요한 것임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빛”도 그 중요성이나 가치에 대해서도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빛”이란 주로 기름을 사용해서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름 값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부유한 사람들은 밤에 불을 환하게 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싼 기름을 쉽게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은 밤에 겨우 어둠을 약간 밝힐 정도였습니다. 빛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 가치가 매우 높았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너희는 소금이요, 빛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말로 풀어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세상 사람들은 너희들을 초라하게 생각하고 무시하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사실 너희들은 소금과 빛처럼 값지고 귀한 존재들이다. 세상은 혹시 너희들의 존재가치를 잘 알지 못할 때가 있더라도, 너희 자신은 성도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자존감과 자긍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 내가 친히 너희를 “소금과 빛”처럼 존귀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지 않느냐?

 

우리는“의를 추구하며 사는 성도”의 참 모습을 사도바울의 삶을 통하여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삶을 살면서 많은 고난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바울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 죄인이었습니다. 군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로마로 압송되는 죄인이었습니다. 얼마나 초라한 모습입니까?

 

그러나 그는 실제로 “소금과 빛”이었습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금”처럼 존귀한 존재였습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소금”처럼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빛”처럼 절망적인 어두운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소망의 “빛”을 비춰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초라한 죄인의 모습이었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람들을 인도하는 “빛”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우리를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우리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Salt(Light) of(in/for) the World이 말은 우리가“세상에서(세상을 위하여) 진가를 발휘해야 하는 소금”이 되어야 하고, “세상을(세상을 위하여) 비춰야 하는 빛”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곳에 쌓여만 있고 세상에서 쓰이지 않는 소금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은행 잔고에 많은 돈이 쌓여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돈의 가치는 언제 나타납니까? 여러 곳에 쓰일 때에 그 가치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돈이 그저 은행에만 있다면, 그 돈은 그저 숫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비춰야 그 빛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5:14-16)

 

The Gathered and Scattered Church(by Hugh Halter & Matt Smay)라는 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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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에서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의 문제점은 잘 모이지 못하는 데 있지 않고, 잘 흩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기독교의 역사만 보더라도 교회가 잘 흩어질 때에 교회는 더 잘 모이는 활력 있는 교회가 되었고, 잘 흩어지지 못했을 때에 교회 부흥이 멈추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교회는 잘 모여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잘 흩어져야 세상에서 참 소금과 빛의 사명을 잘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 겉장에 “AND”라는 단어를 크게 부각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느 TV Channel에서 한국교회에 대한 특집을 다루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소개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너무 충격적이라서 제가 기록해 두었던 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에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

 

세상에서/세상을 위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교회와 성도들을 질타하는 글입니다. 얼핏 듣기에 귀에 거슬리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들어야 하는 말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예배를 왜 “Service”라고 부르나요? 그것은

(1) 우리는 예배(Our Service to God)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예배드리는 모든 자들에게 예비하신 은혜와 축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Gods Service for Us)

예배(Service)에 관한 이 두 가지 의미는 “The Gathered Church”에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의 의미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The Scattered Church”에서 행해져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Our Service to/for the World”입니다. 즉 예배를 통하여 받은 은혜와 축복을 세상을 향하여 전하기 위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Gathered Church”에서 우리들이 귀한 소금이요 빛임을 확인하고 자긍심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동시에 우리들은 “Scattered Church”에서 소금과 빛의 진가를 발휘하여 세상에서 귀중이 여김을 받음으로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소금과 빛”의 삶을 살았던 많은 신앙의 인물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의 이야기들을 몇 가지라도 소개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면 꼭 그런 분들이 살았던 똑같은 삶을 살아야 “소금과 빛”의 삶을 사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들도 각자의 삶에서 얼마든지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 어디에서나, 무슨 일을 당하든지, “소금과 빛”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줄 것입니다.

. 소금과 빛이 세상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려면 자신은 녹아져야 합니다. 맛을 내기 위해서 그 비싼 소금이 녹아야 합니다. 어두운 곳을 밝히기 위해서 그 비싼 기름이 타야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여주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 아주 먼 곳(“땅 끝”)에 가야만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남편/아내, 자녀, 친척, 친구, 동료, 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로마로 가는 중에 큰 풍랑을 만났듯이, 모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풍랑들을 겪습니다. 로마로 향하는 그 배에 여러 종류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있듯이, 세상에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삶의 풍랑 앞에서 힘없는 존재들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모두 당황합니다. 죽음 앞에서 모두 두려워합니다. 그 배에 탔던 사람들에게 바울이 필요했듯이, 세상은 우리들을 필요로 합니다.

 

“소금과 빛”과 같은 존귀한 존재로서,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진가를 발휘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통하여 참 삶의 기쁨과 보람과 만족을 얻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우리들을 향하여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사명을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수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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