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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09-02 (일) 11:17 조회 : 134
설교일 : 2018/09/02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마 5:1-12, 계 2:8-11


 “예수께서 가라사대”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1-12, 요한계시록 28-11)

 

예수께서 말씀하신 “8복”중 마지막 8 번째 복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라는 말씀입니다.

 

Blessed are those who are persecuted because of righteousness,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NIV)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자”는 누구입니까? 그는 “의를 추구하는 과정 가운데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끝까지 의를 이루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면 “의를 추구하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8복에서 지금까지 말씀하신 모든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8복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풀어서 다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1. 모든 욕심을 비우고, 진리와 은혜를 얻기에 갈급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삶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2. 눈물로 회개하며 영적으로 슬퍼하는 애통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삶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3. 하나님께 대하여 절대 순종하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삶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4. “의”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갖고 의를 추구하는 삶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5. 긍휼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남들을 긍휼히 여기며 사는 삶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6. 하나님의 은혜로 심령과 삶에 청결함을 입고,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7.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된 성도들로서, Peacemaker”가 되시는 예수님을 본받아 세상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명을 감당하는 삶

 

8복에서 말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한마디로 “의를 추구하는 삶”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옛사람을 버리고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의를 추구하는 삶의 모습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변화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끝까지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의를 추구하는 삶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그러나 그 길은 끝까지 가야하는 길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 고난과 역경이 있기는 하지만, 영광이 보장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8복의 결론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의를 추구하는 삶”에는 고난과 역경 박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그러한 모든 역경과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끝까지 그러한 의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복이 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큰 상급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는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문뜩 John Bunyan의 “천로 역정” (Pilgrim's Progress)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 책의 주제가 바로 방금 말씀드린 내용(“의를 추구하는 삶”에는 고난과 역경 박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끝까지 그러한 의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복이 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큰 상급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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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장망성(The City of Destruction)에서 살던 어떤 사람(Christian: 기독도/천기독)이 참 진리(구원의 필요성, 죽음 후에 심판이 있음)를 발견하고 영생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그는 장망성을 떠나 천국으로 향하는 순례를 시작합니다. “의를 추구하는 삶”을 위한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그 길이 순탄하지 않습니다.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그 길을 갑니다. 결국 그는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이 책에서 John Bunyan은 장망성을 떠나 천국에 이르는 길, 즉 옛 생활을 버리고 “의를 추구하는” 기독도의 신앙여정에 온갖 어려움이 닥친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은 상징적인 이야기들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첫 번째로 닥친 시험은 그들이 “낙심의 수렁”에 빠질 때였습니다.

 

주인공 “기독도"와 함께 “장망성”을 떠나서 순례의 길에 동참했던 “유약(Pliable: easily bent)”이란 친구가 있었습니다.

 

주인공 기독도는 친구 “유약”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어요. 또한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쓸 수 있고 찬란하게 빛나는 옷을 입게 될 거예요. 그곳은 우리가 살던 도시와는 전혀 다른 곳이랍니다. 지금까지는 늘 슬픔 속에서 지냈지만 이제 그곳에 가면 더 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흘린 눈물을 모두 닦아 주시거든요.”

 

이러한 “기독도”의 말에 '유약'도 기뻐하며 말합니다.

 

듣기만 해도 정말 마음이 흐뭇해지네요. 매우 유쾌합니다. 나의 다정한 친구여, 우리 좀 더 속력을 내서 걸어요. 그곳에 빨리 도착하고 싶어요!”

 

“유약”은 이렇게 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기독도”와 함께 순례의 길에 나섭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그들은 수렁을 만납니다. 그 수렁의 이름은 “낙심의 수렁”입니다. 그 수렁에 빠지자 “유약”은 금방 화를 내며 “기독도”에게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아니, 당신이 이제껏 나에게 말한 행복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인가요? 얼마 떠나지도 않아 이렇게 어려움을 당했으니, 그렇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어려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오?”

 

그리고는 간신히 수렁에서 빠져나온 “유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자기 집으로 달려가 버립니다. 그는 그의 이름 그대로(유약/Pliable: easily bent) 너무 쉽게 그의 결심을 굽힙니다. 그러나 “기독도”는 “도움”이라는 사람의 도움을 얻고 그 수렁에서 빠져나온 뒤, 다시 용기를 얻고 순례의 길을 계속하여 갑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천로 역정”에 나오는 순례자들처럼 “낙심의 수렁”에 빠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1)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에 믿는 자들을 축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며 낙심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2)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할 때에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며 낙심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3) 우리들의 기도가 빨리 응답받지 못한다고 생각되어 질 때에 우리들은 우리들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며 낙심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4)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때로는 어려움을 당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세상에서 잘 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과연 공의로우신 분인가를 의심하며 낙심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5) 신앙생활을 하다가 인간관계의 갈등을 겪을 때에 우리는 그 사람들 때문에 교회생활이나 신앙생활에 낙심 할 때가 있습니다.

 

(6) 신앙생활 하면서 감당해야 하는 “영적 의무”들이 큰 부담으로 느껴질 때 우리는 신앙생활의 기쁨을 잃고 부담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낙심의 수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을 경험할 때에 우리들은“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을 잠시 접고서 세상과 타협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좁은 길”을 택하기 보다는 “넓고 편한 길”을 택하려는 유혹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상황이 너무 어려워서” “잠시 동안만”쉬고 쉽다는 생각을 할 지 모릅니다. 그리고 곧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더욱 더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파도만을 바라보면서 절망하지 말고, 파도 저 편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문제보다 더 크시고, 파도보다 더 크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끝까지 물 위를 걷는 기적의 삶을 날마다 순간마다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가”로만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해야 할 때도 있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적은 배로 항해해야 하는 것과 같을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좌로나 우로 치우지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야 함을 가르쳐 주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기독도 앞에 험준한 또 하나의 산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그 산에서 두 사람이 황급히 도망치듯 내려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겁쟁이(Fear)”이고, 또 한 사람의 이름은 회의/불신(Mistrust)”였습니다. 그들이 기독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은 이 산을 오를 생각을 추호도 하지 마시오. 산도 험하거니와 그 산꼭대기에 아름다운 궁전이 있기는 한데 그 궁전 앞에선 두 마리의 사자가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있어요. 그 궁전을 지나야 천국에 간다고 하는데, 그 궁전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오.

그러나 기독도는 포기하지 않고 그 산을 오릅니다. 그리고 그 궁전 앞에 도달합니다. 그 앞에는 정말로 들었던 대로 사나운 사자 두 마리가 입구를 막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자 뒤에 있던 문지기가 기독도에게 큰 소리로 말합니다. “기독씨, 잘 오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자세히 보십시오. 이 두 마리의 사자는 줄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만 바라보고 가운데로만 오시면 됩니다. 당신은 결코 물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기독도는 담대함을 갖고 똑바로 걸어 아름다운 궁전으로 들어갑니다.

 

의를 추구하며 신앙 생활하는 길에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심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들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며 담대하게 끝까지 달려가야 천국에 이르게 됨을 잘 설명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2) 기독도에게 천국을 향하여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가는 곳마다 사탄이 그를 공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독도는 천국을 향하여 가는 좁은길에 들어서자마자 “바알세블”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습니다. 천국을 향한 순례의 길은 마치 전장터를 방불케 합니다. 언제 어디서 사탄이 공격해 올지 모릅니다. 사탄의 모든 공격을 물리치고 끝까지 달려갈 길을 달려가야 하는 성도들에게 영적 완전무장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비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악한 날에 능히 대항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한 뒤에 서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비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의 가슴막이를 하고, 버티어 서십시오. 발에다가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채비를 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으로,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칼,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십시오. 온갖 기도와 간구로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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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를 추구하며 사는 성도의 삶”이 결코 쉽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를 John Bunyan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허화시”를 통과하면서 온갖 유혹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허화시”는 어둠의 영이 다스리고 있는 도시입니다. 허영에 들뜬 도시이고, 쾌락과 죄가 있는 곳입니다. 죄의 유혹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장해서 성도들을 넘어뜨리는 곳입니다. 사탄이 사탕의 모습으로 성도들을 유혹하는 곳입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가 행복의 기준이 되는 곳입니다.

 

이러한 숱한 미혹 속에서 일만 가지 쾌락이 전시된 허영의 시장의 쇼윈도를 기독도와 그의 신실한 신앙의 친구 “진충(진실하고 충성스러운 사람: Faithful)”씨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통과합니다. 그러나 허용의 시장의 상인들은 그들을 계속하여 미혹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다급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주여,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소서!” 허화시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기도하며 그 시장을 지나가는 그들을 비난하며 조롱합니다. 그리고 그를 핍박합니다. 여기에서 진충씨는 순교를 당합니다. 그러나 기독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위기를 극복하게 됩니다. 기독도는 자기가 진충씨처럼 순교를 하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살아 있는 순교자의 삶을 살라”는 사명을 주신 것으로 알고 새로운 각오로 다시 천성길을 향하여 걸어갑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8복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는 대목입니다.

 

오늘 우리가 두 번째로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성령께서 서머나 교회를 칭찬하신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서머나 교회를 칭찬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저들이 환난과 궁핍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기 때문이었습니다.

 

“끝까지 충성하였는가?”라는 것이 서머나 교회에만 적용된 칭찬과 책망의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교회에 적용되는 칭찬과 책망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중간에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헌신하다가 중도에 그만 두어서도 안 됩니다. 신앙의 경주를 시작하였으면, 결승점에 이를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뛰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뛰기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처음보다 마지막이 더 아름다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8복의 가르침을 통하여 “의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오늘 8복의 마지막 가르침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끝까지 그 길을 달려가라고 권면하십니다.

 

“의를 추구하는 삶”에는 고난과 역경 박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그러한 모든 역경과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끝까지 그러한 의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복이 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큰 상급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성실하게 신앙생활의 달리기 경주를 한 사도 바울의 자랑스러운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고백이 바로 우리들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딤후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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