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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07-29 (일) 11:43 조회 : 133
설교일 : 2018/07/29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마 5:1-5, 창 26:12-22


 “예수께서 가라사대”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1-5, 창세기 2612-22)

 

예수께서 말씀하신 “8복”중 세 번째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영어 성경(KJV/NIV)에는 "온유하다“는 단어를 "meek"라는 말로 번역하였습니다.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영어 사전에 “meek"라는 말을 설명한 다음과 같은 동의어(Synonym)들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submissive/obedient(순종하는), unprotesting(반항하지 않는), compliant(순응하는),

like a lamb to the shearer(양이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하듯이), mild(순하고),

gentle(부드럽고 예의바른), humble(겸손한), yielding(양보하는)...

 

얼핏 보기에 매우 나약해 보이는 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그런 태도를 갖고 세상을 살다보면 늘 남들에게 당하고 손해보고 상처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이 결국에 가서는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역설적인 진리를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8복에서 말씀하고 계신 “온유한 자”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8복에서 말씀하신 “온유한 자”는 “힘도 없고, 실력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남들에게 복종하며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유와 겸손이 아니라 비굴함입니다. 예수님께서 8복에서 말씀하고 계신 “온유함”이란 “비록 힘도 있고, 실력과 능력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을 잘 조절하여 부드럽게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지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유함”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유함”을 세 가지 차원에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1)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유한 태도이고, (2) 두 번째는 주어진 환경에 대한 우리들의 온유한 태도이고, (3) 세 번째는 인간관계에서 우리들이 가져야 하는 온유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세 가지 차원에서 모두 온유한 자세를 가질 때에 우리들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1) 첫째로, 우리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온유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온유한 태도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겸손의 자세로 나타납니다.

온유함의 뜻에 대하여 앞에서 설명할 때에 submissive/obedient(순종하는), humble(겸손한)이라는 단어들을 썼던 것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자의 참 모습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자세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 (22:42)

 

바울은 이렇게 온유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예수를 하나님께서 결국 높여 주신 사실을 성도들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2;6)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것도 온유한 자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성경에서 “겸손”이란 말과 “온유”라는 말은 자주 함께 쓰이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11;29)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이 겸손입니다. 자기의 지혜나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겸손한 자세는 온유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겸손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하늘의 상으로 축복하여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너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라.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주님께서 네가 가는 길을 곧게 하실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여라. 그러면 이것이 너의 몸에 보약이 되어, 상처가 낫고 아픔이 사라질 것이다. (3;5-8)

 

온유한 자들이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바로 이 뜻입니다.

 

(2) 둘째로, 우리들이 가져야 할 온유한 태도는 어떠한 환경이 우리들에게 주어지더라도 그 환경에 순응하며(compliant) 거기에서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하나님의 섭리를 인내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태도입니다.

즉 온유함이란 모든 일을 “근시안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멀리 보고, 길게 보고, 크게 보면서”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욥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보여주었던 태도였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자 욥의 아내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남편에게 신경질적 반응을 보입니다.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2;9)

 

온유함과는 거리가 먼 태도입니다. 그러나 욥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까지도 어리석은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

 

성경은 욥이 이렇게 말하면서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온유하였기 때문입니다. 인내는 온유한 성품의 또 하나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자는 결국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욥은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놀라운 축복을 다시 받게 됨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3) 셋째로,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들이 가져야 할 온유한 태도는 한마디 대표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부드러움”입니다.

온유함의 뜻에 대하여 앞에서 설명할 때에 사용했던 mild(순하고), gentle(부드럽고 예의바른), humble(겸손한), yielding(양보하는)이란 단어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들입니다.

남에게 화를 자주 내는 것은 온유한 태도가 아닙니다. 남의 잘못을 늘 지적하는 것도 온유한 태도가 아닙니다. 시시비비를 반드시 가려야 마음이 풀리는 것도 온유한 태도가 아닙니다. 항상 정의의 사도처럼 행동하는 것도 온유함이 아닙니다. 아무리 자기의 생각과 주장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남에게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온유함이 아닙니다.

 

얼굴에 미소를 가지고 부드러운 말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주는 마음이 온유한 마음입니다. 상대방의 처지와 마음을 헤아려주고 배려해 주는 마음이 온유한 마음입니다. 내가 지금 좀 손해를 보더라도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이 온유한 마음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마음의 공간을 마련해 두는 것이 온유한 마음입니다. 남이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해 주는 마음이 온유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것까지 품어주는 마음이 온유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요한은 본래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천둥의 아들”이란 뜻의 “보아너게(Boanerges)”란 별명을 지어주기도 하셨습니다. 복음서는 그의 온유하지 못했던 성품과 그러한 요한의 태도를 대하시는 예수님의 온유하신 성품을 다음과 같은 기사를 통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쉬이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9;38-40)

 

그런데 고민이 생깁니다. 그러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는 하겠는데, 실제로 그런 태도를 갖고 세상을 살다보면, 앞에서도 잠시 말씀드렸듯이, 늘 남들에게 당하고 손해보고 상처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이 결국에 가서는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역설적인 진리를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저는 우리들의 이러한 고민에 대한 해답을 이삭의 이야기를 통하여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삭의 이야기는 온유한 자가 결국 승리하게 된다(“땅을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는 것을 성경의 진리를 증명하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참으로 온유한 성품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이 블레셋 땅에 거할 때의 일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서, 그 해에 백배의 수확을 거두어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주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양 떼와 소 떼, 남종과 여종을 많이 거느리게 되니,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아브라함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삭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에게서 떠나가거라. 이제 너는 우리보다 훨씬 강하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그러나 이삭은 시기하는 사람을 온유함으로 대처했습니다. 온유함이란 성내지 않는 것입니다. 오래 참는 것입니다. 시기하는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이삭은 딴 곳(그랄 평야)으로 이주하여 우물을 다시 팝니다. 그곳에서 다시 물이 솟아납니다. 다시 그곳 사람들이 시비를 겁니다. 그곳에서도 쫓겨납니다. 그래도 이삭은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는 그냥 다른 곳에 가서 새로 시작합니다. 이삭은 다툼이 있을 때마다 양보를 했습니다. 그는 다툼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복은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오는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이삭을 축복하십니다. 얼핏 생각하면 온유한 자가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강한 자만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악한 자는 잠깐 복을 받는 것 같으나 길이 누리지 못하고 땅에서 그 후손이 끊어질 것이요, 온유한 자는 세상에서 밀려나갈 것 같으나 그 후손이 길이 복을 누리고 천년 왕국에 참여할 것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산중에는 사자와 호랑이만 살고 그 외에 약소 동물은 없어질 것 같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약소 동물의 수효가 더 많은 것을 보더라도 하나님은 온유한 자를 보호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온유하심”일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때에 온유하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요한복음 1:29)

 

도살장으로 순순히 끌려가는 어린 양.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양. 그는 예수님을 그렇게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을 소개하는 내용과 일치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53;4-7)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당신에게 꼭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의 온유함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11:29)

 

디도서는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온유한 성품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가르쳐 주는 바울의 서신서입니다. 크레타 섬에서는 바울과 디도의 전도로 인하여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크레타 섬 사람들은 매우 거칠었습니다. 짐승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으르렁 거리는 크레타 사람들. 이제 그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거친 성품들을 버리지 못하고 온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에게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게 된 크레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을 가르치고 그렇게 살도록 지도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대는 신도들을 일깨워서, 통치자들과 집권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을 할 준비를 갖추며,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을 베풀며,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온유함으로 대하게 하십시오. (디도서 3:1-2)

 

바울의 이러한 권면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들의 말과 행동에서 예수님을 닮은 온유함이 흘러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온화한 기운이 충만한 가정과 교회와 화기애애한 일터를 이루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땅을 기업으로 받으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온유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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