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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07-22 (일) 06:58 조회 : 143
설교일 : 2018/07/22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마 5:1-4, 창 21:14-21



 “예수께서 가라사대”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1-4, 창세기 2114-21)

 

 

예수께서 말씀하신 “8복”중 두 번째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원어에 가장 충실하다고 알려진 NIV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우리 말 새 번역에는 단순히 “슬퍼하는 자”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뜻은 단순히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슬퍼서 한탄하며 우는 것(mourn)을 의미하므로 “애통”하다는 번역이 본래의 뜻을 좀 더 잘 나타내 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영어 사전에 나온 다음과 같은“Mourn"의 동의어(Synonym)들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agonize(괴로워하다) / cry(울다) / lament(울며 슬퍼하다)

moan(울부짖다) / sob(흐느껴 울다) / wail(통곡하다) / weep(울다)

 

그러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mourn(슬퍼하며 울며 애통하는)" 자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1) 첫째로, 눈물로 회개함으로 영적으로 슬퍼하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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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알게 모르게 죄를 짓는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들을 용서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는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 (55;7)

 

단순한 후회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반드시 눈물을 흘려야 진정한 회개를 했다는 증거라는 말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회개의 기도에는 눈물이 동반되게 마련입니다. 이 눈물은 너무 좋은 것입니다. 눈물은 영혼의 세정제와 같은 것입니다. 회개하면서 눈물을 흘리면 하나님께서 사죄의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그 때 영혼이 깨끗해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새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세 번씩이나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곧 뉘우치고 눈물로 회개합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났다. 그리하여 그는 바깥으로 나가서 비통하게 울었다. (22;61-62)


(2) 둘째로, 예수님께서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애통하는 자는 간절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나가 그런 기도를 드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놀라운 복을 누렸던 여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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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가 간절한 마음으로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의 이 비천한 모습을 참으로 불쌍히 보시고, 저를 기억하셔서, 주님의 종을 잊지 않으시고, 이 종에게 아들을 하나 허락하여 주시면,

저는 그 아이의 한평생을 주님께 바치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삼상 1;11)

 

통곡하는 한나의 기도에 하나님은 즉각 응답하셨습니다. 한나에 몸에서 사무엘이 태어납니다. 그 후 사무엘은 사사 시대에 샛별같이 위대한 지도자로 성장합니다. 눈물의 기도는 이렇게 위대하며,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이렇게 강하게 임하게 됨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한나의 이야기를 통하여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도 빼놓을 수 없는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시편에 기록된 다윗의 시들을 보면, 곳곳에서 다윗의 눈물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는 밤마다 짓는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내 잠자리를 적십니다.

내 눈은 시력까지 흐려지고 하도 울어서 눈이 침침합니다.

주님께서 내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 주셨다. (6:6-8)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 나의 음식이 되었구나 (42:3)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56;8)

 

방지일 목사님이 쓴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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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 서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주여! 눈물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눈물은 거꾸로 흐릅니다. 눈에서 흘러 하늘에 가 닿습니다.

눈물의 사람이 되십시오. 눈물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당신이 흘린 눈물을 위로와 감사의 병에 담아주십니다.

 

눈물에는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간절함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물의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유명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마른 눈을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오늘 말씀을 통해 눈물 신앙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체험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셋째로,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애통하며 슬퍼하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위로하여 주시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평강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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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두 번째 본문 창세기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애통하며 슬퍼하는 하갈을 위로하시는 이야기입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의 몸종이었습니다. 사라는 자기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자기의 몸종인 하갈을 남편에게 들여보내서 대를 잇게 합니다. 그래서 하갈은 아브라함의 아이를 낳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로 인하여 아브라함의 가정에 불화가 생깁니다. 그래서 두 번씩이나 하갈이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갈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두 번째로 쫓겨났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하갈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는 자기의 여주인 사라의 말에 순종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주인이 자기를 질투합니다. 그뿐입니까? 자기를 보호해 주어야 할 아브라함은 자기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사라의 편을 들어줍니다. 세상에 이렇게 억울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무리 자기가 그 집의 종이긴 하였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이용만 당하고 내쫓기는 신세가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입니다.

 

집에서 쫓겨난 하갈은 아들 이스마엘을 데리고 브엘세바 빈들에서 정처 없이 헤매고 다닙니다. 먹을 물조차 다 떨어지자 하갈은 “아이가 죽어 가는 꼴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하면서 소리 내어 웁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하갈의 울음소리를 들이시고 천사를 보내어 하갈을 위로하십니다. “하갈아, 어찌 된 일이냐? 무서워하지 말아라. 아이가 저기에 누워서 우는 저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아이를 안아 일으키고, 달래어라. 내가 저 아이에게서 큰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갈의 눈을 밝혀 주십니다. 하갈은 샘을 발견하여 물을 담아다가 아이에게 먹였고, 하나님은 그 아이가 자라는 동안 늘 함께 하시면서 돌보아 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갈의 이야기를 통하여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 슬픔 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작은 신음 소리에도 응답하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육신이 약함으로 위로를 필요로 합니다. 외로움과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그러진 인간관계로 인하여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 불경기에 허덕이며 경제적으로 지친 사람들, 사업에 실패하여 고민하는 사람들, 불안한 신분 문제로 인하여 고민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지 못하여 외로움에 떠는 사람들, 사랑하는 이들은 잃고서 아직도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사람들, 신앙생활을 하다가 시험에 들어서 방황하는 사람들, 이루고저 하는 꿈이 좌절되어서 허탈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 가정의 불화로 인하여 갑자기 자신이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한 외로움을 느끼며 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 자녀들의 문제로 인하여 안타까워하며 고민하는 사람들... 인간들은 온갖 문제들로 인하여 고민하며 씨름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그러기에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기를 원합니다. 남편은 아내로부터,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위로를 받기를 원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위로를 구합니다. 때로는 부모들이 자녀들로부터 위로 받기를 원할 때도 있습니다. 위로를 얻기 위해 친구를 찾아갈 때도 있습니다. 위로를 얻기 위해 상담자를 찾기도 합니다.그러나 우리들은 인간들로부터 위로를 얻는다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경험합니다. 위로를 받으려고 갔는데, 오히려 상대방을 위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위로를 받으려다가 더 큰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인간들이 주는 위로는 우리들의 텅 빈 마음들을 충분하게 채워주지 못함을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참 위로자가 되심을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부르는 찬송에“Not Forgotten"이란 찬양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잊혀버린바 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I am not forgotten. God knows my name.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내 이름을 아십니다.)

Light over darkness! (어두움에 빛이 되시고)

Strength over weakness! (약할 때에 힘이 되시고)

Joy over Sadness! (슬플 때에 기쁨이 되십니다.)

He knows my Name.

Father of the fatherless. (아버지가 없는 자들에게 아버지가 되시고)

Friend to the friendless. (친구가 없는 자들에게 친구가 되시고)

Hope for the hopeless.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 소망이 되십니다.)

He knows my name.

I will praise you! (나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for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를 놀랍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설교 후에 우리가 함께 부를 복음성가(He knows my name!":내 이름 아시죠)의 가사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기억하시고 위로하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I have a Maker. He formed my heart.

(나를 지으신 하나님. 나의 마음도 지으셨지요.)

Before even time began. My life was in his hands.

(태초부터 나의 삶은 그의 손에 있지요.)

He knows my name. He knows my every thought.

(그는 내 이름을 아시지요. 내 모든 생각도 아시지요.)

He sees each tear that falls. And hears me when I call.

(그는 나의 흐르는 눈물을 보시지요. 그리고 내가 부를 때에 들으시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모든 이름을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을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위로해 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위로의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위로하여 주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참 위로와 평강을 경험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수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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