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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04-01 (일) 10:54 조회 : 133
설교일 : 2018/04/01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고후 5:14-17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 14-17)

 

 

유난히도 춥고 길었던 겨울이었습니다. 4월인 지금까지도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큰 눈이 내렸었지요. 그러나 이제 교회 마당에 개나리 가지에 꽃봉오리가 돋아났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을 맞이하여, 차가운 겨울동안 죽었던 것 같았던 앙상한 가지에서 푸릇푸릇한 새싹들이 힘차게 돋아나고 있습니다.

 

춥고 기나긴 겨울 뒤에 반드시 봄이 오듯이, 무서운 폭풍 후에 더 맑은 하늘이 펼쳐지듯이, 주님은 부활하셔서 고난과 역경 후에 반드시 기쁨이 오는 것을 증거 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우리 모두에게 큰 소망과 용기를 줍니다. 움츠렸던 모든 것들이 기지개를 펴기 때문입니다. 죽은 것과 같았던 우리들의 삶의 가지들로부터 새싹이 다시 돋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복과 소생이 약속된 복된 부활절을 맞이하여, 성도님들의 심령과 삶의 구석구석에 부활의 기쁨과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독교에서 증거하고 있는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이는 기독교의 교리 중에 부활만 없다면 성경의 모든 가르침들을 믿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는 것은 참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부활신앙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교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고전 15:14-19)         

 

그러면 우리가 가져야 할 부활신앙이란 무엇입니까?

(1)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설명하였듯이,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본체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그가 본래 하나님이셨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그가 100% 인성을 가지신 분이심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100% 하나님이셨음을 보여주는 너무나도 분명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논리적으로 따져 본다면, 예수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의 권세는 하나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절에 항상 부르는 찬송가 #150장에 "거기 못 가두네 예수 내 구주" 라는 가사가 있듯이, 죽음의 권세가 하나님 되시는 예수님을 무덤에 가두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지금도 예수님께서 살아서 우리들의 삶에 동행하여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찬송가 #151장 후렴은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예수 예수 늘 살아 계셔서 주 동행하여 주시며 늘 말씀하시네

                예수 예수 내 구세주 예수, 내 맘에 살아계시네, 늘 살아계시네

 

(2) 두 번째로, 우리들이 가져야 할 부활신앙은 우리들도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들이 부활하게 될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신령한 몸이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신령한 몸이셨습니다. 바울은 우리들이 부활 후에 이러한 신령한 몸을 입게 된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고전 15:42-44)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의미는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갖는 것이 부활신앙인 것입니다. 이러한 영생에 관한 확실한 소망이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가져야 하는 부활신앙은 단순히 내세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 세상을 살면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께서도 강조하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 11:25-26)

 

사실 부활의 참 의미는 단순한 회복과 소생만은 아닙니다. 단순히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한다면,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도부활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열왕기상 17:17-24),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이 다시 살아난 것(누가 7:11-17),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요한 11:40-44)부활이라고 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다시 살아 난 것을부활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죽었던 몸은 다시 살아났지만, 그 후에 그들은 다시 죽음을 맛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살아나신 것만을부활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은옛사람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할 수 있다는 의미는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고린도후서 5 17절의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말한 바울의 고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새 생명을 얻었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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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쓴부활이란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왜 그 소설의 제목이부활일까요? 톨스토이는 그 소설의 주인공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을부활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주인공인 네퓰류도프(Dmitri Nekhlyudov)는 귀족이었습니다. 그는 친척 집을 방문했다가 그 집의 하녀인 Katusha와 정을 통하게 됩니다. 네퓰퓨도프에게는 그녀가 한 때 지나치는 상대였지만, 그 여자는 그 일로 인하여 주인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생존을 위하여 몸을 파는 여자가 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네퓰류도프는 어느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했다가 Katusha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가 살인사건의 죄인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네퓰류도프는 그 여자가 그렇게 된 것이 자기가 오래 전에 그에게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강한 죄책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 중에 회심합니다. 그는 그녀에게 자기가 진 죄의 빚을 갚으려고 합니다. 그녀를 위한 구명운동을 전개하고, 결국에 가서는 그녀와 함께 시베리아 유형을 자청하여 떠납니다. 그 당시 귀족이 하녀에게 그런 못된 짓을 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녀의 삶을 보면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시베리야에 함께 유배를 떠난 네퓰류도프는 이제 더 이상 옛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말로 표현하자면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앞에서 예수님의 부활은옛사람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톨스토이는 그 소설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게 된 주인공 네퓰류도프야말로 참 부활을 체험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참 의미는 죽었다가 다시  "옛사람"으로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옛사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완전히 죽으신 것처럼 죽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비스러운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것이,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압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하여 단 한 번만 죽으신 것이요, 그가 지금 살아 계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 스스로가 죄에 대하여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5:6-11)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직접 보았던 제자들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들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며 비겁하게 도망 다녔던 제자들이 담대해졌습니다. 실망하여 고향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발걸음이 다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옮겨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울은 변하여 바울이라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내가 아니라, 새로운 나로 태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날마다 걱정하며 한숨짓던 내가 아니라, 어떠한 환경에서도 감사하며 찬송을 부르는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연약하였던 내가 아니라, 주 안에서 영육 간에 강건함을 누리는 새로운 내가 된다는 말입니다. 나 만을 위하여 살았던 내가,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하여 사는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땅만을 바라보며 세상의 즐거움만을 좇던 내가 변하여 신령한 기쁨을 추구하는 고귀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모두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새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쁘고도 복된 부활의 절기를 맞이하여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의 모든 삶에 모든 것이 소생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부활하셔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수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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