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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03-18 (일) 14:35 조회 : 188
설교일 : 2018/03/18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시 46:1-11, 27:1-6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시편 461-11, 271-6)

 

몇 주일 전에 남부 플로리다 교회에서 한인 연합감리교회 총회 준비 모임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연합감리교 내에서 한인교회의 앞날을 함께 의논하는 중요한 회의였습니다.

그런데 그 회의가 열린 한인 교회로부터 지난 214일에 총기 사건이 나서 17명의 목숨이 희생되었던 Marjory Stoneman Douglas High School20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그 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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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많은 방문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학교 주변에 온통 조화로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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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도 그곳에서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위해서, 또한 앞으로 미국에서 이러한 끔찍한 총기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되기를 위해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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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곳을 둘러보면서 우리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장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려운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나님께로부터 위로와 평강을 얻으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책도 놓고, 또 성경말씀들을 써서 곳곳에 붙여 놓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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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눈에 띄는 성경구절이 시편 461절의 말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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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우리의 힘이시며,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 곁에 계시는 구원자이시니... (46:1)

 

그래서 저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되신다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아버님 상을 당한지 몇일 지나지 않아서 그런 생각이 더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말씀이 저에게 큰 위로의 말씀으로 다가 왔습니다.

 

성경에서는 “피난처”라는 말과 자주 함께 쓰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산성” “요새” 라는 말들입니다.

 

주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분,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십니다. (18:2)

 

이 말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공동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들이 내포하고 있는 뜻을 잘 표현한 몇 가지 상징적인 그림을 소개해 봅니다.


- 어미 닭은 병아리들에게 참 피난처가 되듯이, 우리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피할 곳은 곧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의 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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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우리들에게 참 위로와 피난처를 제공하여 주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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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이 삶에 큰 풍랑을 만날 때 하나님의 품은 우리들에게 참 평강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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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풍랑 속에서도 안전하게 거할 수 있는 요새가 되십니다. 우리들이 그 요새에 거하면 세상의 어떤 풍랑도 다 견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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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요새는 어떠한 어려움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는 피난처와 같은 곳입니다.

다음 사진은 바르트부르크 성입니다. 이 성은 마틴 루터가 생명의 위협을 겪을 때에 10개월 간 피해있었던 루터의 “피난처”였습니다. 이 성에 가보면 정말로 적의 어떤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요새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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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 성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돌로 잘 만들어졌지만, 본래 그 다리는 성 안에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다리였다고 합니다. 그 다리가 펴져 있을 때에는 자유롭게 성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그 다리가 위로 접혀지면 그 성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 다리 밑이 큰 낭떠러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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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요새들은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의 맛사다 요새를 들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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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러한 지형적인 조건을 갖춘 곳에 요새들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독일에 있는 쾨니히슈타인 요새가 그중 하나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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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리스에 있는 메테오라(Meteora)도 유명한 요새 중에 하나입니다특히 이곳은 그리스정교 크리스쳔들이 이슬람 군대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천연적인 지리적 조건을 갖춘 이곳을 그들의 피난처로 삼고 신앙의 자유를 지켰던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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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피난처가 되시고, 산성과 요새가 되신다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즉 어려울 때에 그 어려움을 피할 수 있는 곳, 그래서 그곳에서 참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곳. 우리들을 해치려는 것들로부터 가장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는 곳, 그래서 위험한 환경 가운데서도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

 

다윗은 오늘 두 번째 본문 말씀인 시편 27편에서 그가 왜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분명한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본문 1)

 

하나님께서 그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것이 단순히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체험적인 신앙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대적자들, 나의 원수들, 저 악한 자들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다가왔다가, 비틀거리며 넘어졌구나. (본문 2)

 

그러므로 다윗은 앞으로도 어떠한 두려운 상황이 자기에게 닥치더라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군대가 나를 치려고 에워싸도, 나는 무섭지 않네. 원수들이 나를 친다 해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려네. (본문 3)

 

다윗은 자기에게 닥치는 두려운 상황들을 “군대가 나를 치려고 에워싸고” “원수들이 나를 친다”라는 말로 묘사하고 있지만, 우리들도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우리들의 어깨를 쳐지게 하며, 한없이 나를 작게 느껴지게 하는 상황을 만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약해지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건강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르는 재난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을 못 이룰 때도 있습니다. 계속되는 불경기로 인한 초조함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자녀들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피난처이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산성과 요새이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풍랑이 몰아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반 학생들에게 평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이 그린 그림 중에서 두 작품이 우수한 작품으로 뽑혔습니다. 한 학생이 그린 그림은 쳐다보기만 해도 평안을 느끼게 하는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풍경이었습니다. 마을 앞에는 잔잔한 시내가 흐르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삽살개 한 마리가 초가집 마당에서 한가로이 졸고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그림은 아주 다른 모습의 평화를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폭풍우가 무섭게 몰아치는 높은 벼랑의 모습이 그 그림의 배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벼랑의 틈바구니 속에 깊이 패어진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어미 새의 품안에서 새록새록 잠들어 있는 아기 참새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 두 작품 중에 어느 작품이 대상을 받았겠습니까? 두 번째의 그림입니다. 참 평화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폭풍우가 몰아치는 문제 많은 곳이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을 때에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참 평화요 쉼입니다.

 

다윗이 경험하였던 평화가 그런 평화였습니다. 맑은 시냇물과 푸른 초장에서만 경험하였던 평화가 아니라,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에서도 경험할 수 있었던 평화였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산성과 요새가 되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다윗과 같은 귀한 고백이 항상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은 사실을 애써 믿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들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모든 어려움을 막아 주시는 방패가 되시고, 우리들을 안전하게 거하게 해 주시는 산성과 요새가 되시며, 또 환란 중에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경험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풍랑 중에도 평화를 주신 “피난처”가 되셨음을 감사함으로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흔들림이 없는 평강의 삶을 사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우리들의 피난처가 되시고 산성과 요새가 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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