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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박사들처럼"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7-12-17 (일) 13:01 조회 : 388
설교일 : 2017/12/17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마 2:1-12

“동방의 박사들처럼”

(마태복음 21-12)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따라 예수님 나신 곳까지 가서 귀한 예물을 드렸다는 성경의 이야기는 성탄절에 빼 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이 되면 우리들은 “동방 박사 세 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 갔도다”라는 찬송을 부릅니다. 또한 동방 박사들이 낙타를 타고 별을 따라 가는 그림,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며 예물을 드리는 다음과 같은 그림들은 성탄 카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장 성스럽고 아름다운 그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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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박사에 관한 이야기는 4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1) 마태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오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깨닫고 그를 경배하는 것이 참 지혜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동방에서 온 그들을 “박사”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영어 성경은 그저 Wise Men 혹은 Magi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 원어인 “마고이란 말도 “지혜로운 자”란 뜻입니다. 이 용어는 바벨론의 모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았던 지혜의 사람 다니엘에게 적용되기도 하였던 말이었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자기 나라에서 “마고이로 불렸던 자들이라는 공식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마태가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는 것입니다. 마태가 그들을 의도적으로 “지혜자”라고 부른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마태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깨닫고 그를 경배하러 온 그들이 참 지혜로운 자라는 것을 강조하여 전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마태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유대인들은 “참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고, “참 지혜자는 여호와를 경외할 줄 아는 사람”임을 율법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9:10)

 

그런데 동방에서 온 이 사람들은 아기 예수가 메시아임을 믿고 그에게 경배를 드립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성경에 나오는 다음의 모든 단어들은 동의어입니다.

 

       하나님 = 여호와(야웨) = 메시야 = 그리스도 = 예수

 

그러므로 그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다는 의미는 그들이 아기 예수를 메시아요 하나님으로 고백한 것이고, 이것은 곧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참 지혜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며 그만을 경외하는 확실한 신앙을 가짐으로 성경이 인정하는 참 지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둘째로,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마태가 강력하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던 그 사람들이 “이방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놀라운 복음입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원에서 제외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에 있어서는 모든 민족에게 다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은 말로 반복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16)

 

메시야를 기다렸던 민족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동방의 박사들은 유대 사람들이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여겼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쳐버릴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우리와 같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복음”이고, 유대인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이야기요 동시에 도전이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주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의도적으로 그의 복음서를 읽는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이 먼저 메시야에게 경배를 드렸다”는 사실을 고발하듯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TV 프로그램 중에 “Shame on You”라는 것이 있는데, 마태는 그런 심정으로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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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읽고 유대인들이 어떻게 느꼈을까요? Shame on me!”라는 말을 찾아보니 누군가 그 말을 “쪽팔려!”라는 말로 번역을 한 것을 보았습니다. 좀 경박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 뜻을 잘 표현한 번역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이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먼저 전해진 하나님의 뜻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찾던 것을 얻지 못하였지만,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만은 얻었습니다... 그들의 허물 때문에 구원이 이방 사람에게 이르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질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려는 것입니다. (11:7-11)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이 이야기는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복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부터 혈통을 초월한 것임을 성경이 확실히 증거 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릅니다.

성경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0:10-13)

 

(3) 셋째로, 마태는 우리들이 아기 예수께 드려야 할 신앙고백이 무엇이어야 함을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예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습니다.

고대 동양 풍습에서 황금과 유향은 왕을 알현할 때에 드리는 예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을 아기 예수께 예물로 드렸다는 것은 그들이 아기 예수를 만왕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임을 고백했다는 뜻입니다.

 

성서학자들은 동방박사들이 아기예수께 드린 황금은 메시아의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고, 유향은 예수의 신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이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는 것은 놀라운 의미가 있습니다. 몰약은 주로 아라비아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추출되는 것으로서 상당한 고가의 향기를 지닌 액체인데, 이것은 주로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몰약을 선물로 가져갔다? 얼핏 이해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그들이 몰약을 아기 예수께 드렸다는 것을 통하여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었음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죽으려 오셨다는 것입니다.("Born to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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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부르는 찬송가도 그들이 드렸던 예물들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찬송합니다.

 

1. 동방에서 박사들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따라 왔도다

2. 베들레헴 임금께 나는 황금 드리네, 영원토록 모든 백성 다스려 주소서

3. 거룩하신 구주께 나는 유향 드리네, 만국백성 찬송드려 만유 주 섬기세

4. 주의 죽을 몸 위해 나는 몰약 드리네, 세상 모든 죄인 위해 십자가 지셨네

 

(4) 마지막으로, 마태는 동방박사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들이 아기 예수를 어떠한 자세로 맞이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첫째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리는 동방박사들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고 숭고하게 보이는 이유는 저들이 보여주고 있는 “겸손”때문입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라고 하면 학문도 높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나이도 지긋이 들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도 받았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굿간 말구유에 누워있는 갓난아기에게 엎드려 경배를 드립니다. 동방 박사들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겸손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아무리 세상의 권력이 많더라도, 우리들은 예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마태가 아기 예수께 경배 드리는 동방박사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전하려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그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구체적인 헌신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귀한 예물들을 드렸습니다. “황금” “유향” “몰약” 그 당시 보통 사람들이 준비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들입니다. 동방 박사들에 대하여 전해지는 전승에 의하면, 그들 중에 어느 사람은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그 예물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에 멀리 동쪽으로부터 베들레헴까지 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산도 넘어야 하고, 물도 건너야 하고, 사막을 지나기도 해야 했을 것입니다. 도적들의 위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기들이 하고 있던 일들을 다 내려놓고 멀리 떠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삶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경배의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의 이러한 모습들은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려고 할 때에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자세가 무엇임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찬송가 #1165절에 다음과 같이 가사가 있습니다 .

 

“동방 박사 본을 받아 우리도 절하세”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리고 있는 동방 박사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께 인정과 칭찬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기억되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우리들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아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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