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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7-12-10 (일) 08:02 조회 : 371
설교일 : 2017/12/10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애 3:19-26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예레미야애가서 319-26)

 

오늘은 강림절 두 번째 주입니다. 강림절 촛대에 두 번째 촛불이 켜졌습니다.

 

오늘은 “기다림”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강림절 기간 중에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는 “기다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예레미야애가서 326절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기다림”이란 좋은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잠히”기다리라는 말은 조급해하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그저 넋 놓고 무조건 기다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소망 중에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확신 중에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일을 시작하실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심한 고난 중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야만이 그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하나님이 보내실 구원자가 아닙니다. 하나님 바로 그 분입니다. 그 메시아는 반드시 오신다는 굳센 믿음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메시아 사상”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 사상”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것이 바로 “기다림”입니다. 이 “기다림의 메시아 사상”을 잘 표현한 것이 우리가 강림 절기에 많이 부르는 다음과 같은 찬송입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 구하소서 이스라엘.

그 포로생활 고달파 메시야 기다립니다.

 

곧 오소서 지혜의 주. 온 만물질서 주시고,

참 진리의 길 보이사, 갈 길을 인도하소서.

 

곧 오소서 소망의 주, 만백성 한맘 이루어

시기와 분쟁 없애고, 참 평화 채워주소서.

 

(후렴)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라 임마누엘

  

이 찬송의 마지막 후렴 가사를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라 임마누엘” 고난 중에 있더라도 소망을 가지고 메시야를 기다리면 기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애가서입니다. 주전 586, 드디어 남 왕국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 정복자들에 의하여 성전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 채 백성들은 모두 포로로 끌려가는 민족의 비극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비탄에 잠겨 민족적인 슬픔을 노래합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애가서입니다.

 

예레미야는 자신과 민족이 당하고 있는 심한 고통을 다음과 같이 슬프게 노래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에 얻어맞고, 고난당하는 자.

주께서 나를 이끄시어, 빛도 없는 캄캄한 곳에서 헤매게 하시고,

온종일 손을 들어서 치고 또 치시는구나.

주께서 내 살갗을 약하게 하시며, 내 뼈를 꺾으시며,

가난과 고생으로 나를 에우시며,

죽은 지 오래 된 사람처럼 흑암 속에서 살게 하신다.

내가 도망갈 수 없도록 담을 쌓아 가두시고, 무거운 족쇄를 채우시며,

살려 달라고 소리를 높여 부르짖어도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

다듬은 돌로 담을 쌓아서 내 앞길을 가로막아, 길을 가는 나를 괴롭히신다.

길을 잘못 들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외롭게 하신다.

주께서 나를 과녁으로 삼아서, 활을 당기신다.

내 백성이 모두 나를 조롱하고, 온종일 놀려댄다.

쓸개즙으로 나를 배불리시고, 쓴 쑥으로 내 배를 채우신다.

내게서 평안을 빼앗으시니, 나는 행복을 잊고 말았다.

나오느니 탄식뿐이다.

내가 겪은 그 고통, 쓴 쑥과 쓸개즙 같은 그 고난을 잊지 못한다.

잠시도 잊을 수 없으므로,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애가서 3:1-20)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립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그러한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 중에 기다리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

주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주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의 신실이 큽니다."

나는 늘 말하였다. "주는 내가 가진 모든 것, 그러하기에 주께 내 희망을 건다."

주께서는, 주를 기다리는 사람이나 주를 찾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주께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참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 (본문 21-26)

 

그는 이러한 확신을 그가 가질 수 있었던 분명한 이유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주의 사랑은 한결같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22)

 

“한결같다”는 말은 “변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예레미야는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2) 주의 긍휼이 끝이 없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22)

 

“긍휼이 끝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우리들에게 긍휼을 베푸실 수 있는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3) 주의 신실하심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의 신실이 큽니다. (23)

 

“신실”이란 말은 영어로 “Trustworthy”라고 합니다.

“믿을만하다” “믿을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뜻입니다.

개역성경에서는 “신실”이란 말 대신에 “성실”을 썼습니다.

영어성경 NIV도 “Faithfulness”라는 말을 썼습니다.

 

                                    great is thy faithfulness

 

하나님은 당신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분.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만하고” 또 “믿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갖고 있었던 믿음이었습니다.

 

(4) 주님은 그가 가지는 희망의 전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는 내가 가진 모든 것, 그러하기에 주께 내 희망을 건다. (24)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가졌던 희망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갖고 있었던 몇 가지 희망 중에 하나가 아니라 전부였다는 말입니다.

하나밖에 가질 수 없었고, 또 그 외에 다른 것을 가질 필요도 없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확실한 희망이라는 확신, 다른 것들에 희망을 건다는 것은 모두 소용없는 것이라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 순애씨가 쓴 “절대 희망”이란 책이 있습니다.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쓴 신앙 간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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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전도사”로 많은 강연을 하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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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상 이 시간 그 책 내용을 다 소개하지는 못하겠지만, 저는 그 책 제목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절대 희망” 어려운 중에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상황에 따라서 포기할 수도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끝까지 기다리며 가져야 하는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희망,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절대로 가져야 하는 희망. 끝까지 기다리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희망. 그는 그러한 희망을 붙들고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의 그러한 “절대 희망”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가졌던 희망이 이러한 “절대 희망”이었기에 그는 “주께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참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5) 마지막으로, 예레미야가 어려운 중에서라도 하나님의 구원을 참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님은 그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반드시 복을 주신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주께서는, 주를 기다리는 사람이나 주를 찾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25)

 

기다림이 절대로 헛된 것이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국무총리까지 지냈던 정 운찬 박사가 쓴 “가슴으로 생각하라”는 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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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대나무를 무척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나무가 주는 교훈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대나무는 한 해에 모두 키가 자란다고 합니다. 한창 자라는 여름에는 자고 나면 크기가 달라질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대가 단번에 꼿꼿한 위용을 자랑하기 위해서는 깜깜한 땅 속에서 촘촘히 뿌리를 뻗으며 몇 년 동안을 숨죽이고 기다린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땅 속에서 인내하며 기다린 대나무는 때가 되면 단숨에 크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인생도 대나무처럼 인내하며 기다릴 때에 언젠가는 꽃을 피우게 된다는 교훈을 어릴 때에 아버지로부터 배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시편 46:10)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당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에게 닥친 시련과 고통이 아무리 크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그것들보다 훨씬 더 크시고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도움을 잠잠히 기다리는 믿음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에게도 그러한 인내가 있기를 바랍니다. 소망 중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다림을 절대로 헛되게 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강림절에 우리들이 가져야 하는 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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