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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여, 가요, 우리 함께 들로 나가요!"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7-12-03 (일) 12:39 조회 : 458
설교일 : 2017/12/03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아 7:10-13


“임이여, 가요. 우리 함께 들로 나가요!

(아가서 710-13)

 

오늘은 교회력이 새로 시작되는 첫 주일입니다.

세상 달력에 비유하자면, 오늘은 교회력의 새해 첫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력”을 만든 이유는 예수님의 생애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교회력을 지키게 함으로써 성도들로 하여금 날마다의 삶을 예수님과 동행하게 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력의 전체적인 주제는 “예수님과의 동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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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도표에서 보시는 것처럼, 교회력은 예수님의 나심을 기다리는 대강절/강림절 (Advent)로부터 시작합니다. 대략 12월 첫째 주일부터 4주간입니다. 주님과의 동행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오늘 강림절 촛대에 촛불 하나가 켜졌습니다. 앞으로 4주에 걸쳐서 촛불 네 개가 다 점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탄생하신 크리스마스에는 가운데 촛불까지 켜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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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지낸 후 1월 첫째 주일부터 재수요일(Ash Wednesday) 전까지의 기간을 주현절(Epiphany)로 지킵니다. 이 기간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기리며 주님과 동행하는 기간입니다.

 

교회는 계속하여 사순절(Lent)을 지킵니다. 사순(四旬)이란 말은 40이란 뜻인데, 재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시작하여 부활절 전 날까지 주일을 뺀 40일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 기간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 부분을 기리는 기간입니다. 특히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은 “고난주간(Passion/Holy Week)”으로써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리는 기간입니다. 예수님 사역의 절정(Climax)인 성금요일 (Good Friday)이 그 주간에 있지요. 교회는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동행하게 하기 위하여 이 기간을 정한 것입니다.

 

부활절 후 50일의 기간을 부활절기(Easter Season)라고 부릅니다. 성도들은 이 절기를 지키며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기를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곧 이어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기념하며 “성령강림 주일(Pentecost Sunday)”로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과 동행하시기 위하여 성령의 모습으로 오신 것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주일이지요.

 

교회는 계속하여 새로운 교회력이 시작되는 대강절까지 오순절 성령 강림을 기억하는 절기로 지킵니다. 위에 도표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Green 색으로 표시된 긴 기간입니다. 일 년의 반이 넘는 이 기간을 교회는 오순절기로 지키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력은 이 기간에 있는 주일들을 가리켜 “평상주일들”(Ordinary Sunday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도들이라면 날마다 보통의 삶들을 성령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과 함께 동행 하며 살아야 한다는 깊은 뜻이 교회력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은 Christ the King Sunday(왕 되신 예수님 주일)입니다. 그동안 우리 성도들과 함께 동행 했던 예수님은 마지막에 모든 나라와 민족들로부터 왕으로 높임을 받으실 분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생이 죽음과 절망과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영광과 승리로 이어져 있듯이, 그분과 동행하는 성도들의 삶도 영광으로 이어짐을 교회력은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동행”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동행”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아가서의 말씀은 “성도와 예수님과의 동행”을 “서로 깊이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함께 하는 기쁨”에 비유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1.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임을 다음과 같이 애타게 기다립니다.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나의 임이여, 노루처럼 빨리 돌아와 주세요. 베데르 산의 날랜 사슴처럼 빨리 오세요. (2:17)

임이여, 노루처럼 빨리 오세요. 향내 그윽한 이 산의 어린 사슴처럼, 빨리 오세요. (8:14)

 

사랑하는 임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가서의 이 노래는 우리들이 강림절에 부르는 다음과 같은 찬송을 생각나게 합니다.

 

1. 곧 오소서 임마누엘

2. 곧 오소서 지혜의 주

3. 곧 오소서 소망의 주

(후렴)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라 임마누엘

 

2.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를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서로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임이여, 가요. 우리 함께 들로 나가요. 나무 숲 속에서 함께 밤을 보내요. 이른 아침에 포도원으로 함께 가요.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이 피었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함께 보러 가요. 거기에서 나의 사랑을 임에게 드리겠어요. (7:11-12)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기쁨이 이렇게 큰 것입니다. 황량한 들도 사랑하는 임과 함께라면 기쁘고, 나무 숲 속에서 밤을 지내는 것도 사랑하는 임과 함께라면 무섭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른 아침에 포도원 일터에 나가는 것도 즐겁다는 말입니다.

 

저는 아가서의 이 노래를 들으면, “저 장미꽃 위에 이슬”이란 찬송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이 찬송은 멜로디가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찬송의 가사를 더 좋아합니다. 이 가사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성도의 고백 시입니다. 저는 이 가사를 다음과 같이 풀어 보았습니다.

 

장미꽃에 아직도 이슬이 맺혀 있는 이른 아침,

나는 주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동산을 거닐고 있을 때에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청아한 음성으로 인하여 울던 새들도 잠잠해집니다.

주님의 음성이 나의 귀에 쟁쟁하게 울립니다.

나는 하루 종일 동산을 거닐며 주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나와 함께 걸으시는 주님, 그는 나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너는 나의 것이라고...

분과 함께 동산에 거하며 누리는 기쁨을 세상 사람들은 아무로 모를 것입니다.

나는 이른 새벽부터 깊도록 동산에서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에게 사명을 주시고, 세상에 나가서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주님께서는 그곳에서도 나의 친구가 되셔서 나와 동행하실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찬송 시입니까? He walks with me, and talks me, and he tells me I am His own.”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의 아름다운 모습인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의 삶은 풍성하고 복된 것입니다.

 

저는 Nicky Gumbel이 쓴 “알파 교재”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를 읽으면서 “동행의 축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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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년 신사가 노르웨이의 한 호텔에 묵고 있었을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는 복도 아래쪽에서 한 소녀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소녀의 피아노 실력은 초보였습니다. 겨우 띵똥 거리는 수준이었습니다. 그가 치는 피아노 소리는 거의 소음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그만 치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려고 하였는데, 그 순간 어느 사람이 그 소녀의 곁에 앉아서 함께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소녀가 치는 띵똥 피아노에 멋진 화음을 만들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녀 옆에 앉았던 그 사람은 그 소녀의 아버지였고, 그는 “이고르 왕자”라는 오페라를 작곡한 당대 유명한 음악가 Alexander Borodin이였다고 합니다.

 

동행의 축복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들은 부족하여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없지만,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님은 우리들의 곁에서 우리들의 부족함을 채우시고 우리들을 도우셔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왕에 음악 이야기를 했으니, 춤 이야기도 해 볼까요? 저는 춤을 잘 추지 못합니다. 그러나 춤을 잘 추는 비결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춤을 잘 추는 상대방에게 자기의 몸을 유연하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Dancing with Jesus!"입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인생의 춤을 예수님과 함께 출 수 있는 것입니다.

 

강림절이 시작되는 오늘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처럼 “나의 임이여, 노루처럼 빨리 오세요!”라고 노래하며, 우리들의 삶에 동행하여 주실 예수님을 소망 중에 사모하며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임이여, 우리 함께 들로 나가요!”라고 말했던 술람미 여인처럼 다가오는 한 해도 주님과 동행하겠다는 귀한 소원과 결심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은 우리들의 삶에 동행하시면서 우리들의 삶에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여 주시며, 우리들로 하여금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춤을 추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 교회력이 시작되는 첫 주일에 성만찬을 행하는 이유도 주님과의 동행을 소망하고 결단하기 위함입니다. 성만찬을 통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를 대하시고, 예수님을 우리들의 심령과 삶에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모셔 들이고, 주님과 더 가깝게 동행하겠다는 귀한 결단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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