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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9) "너희는 나의 편지다!"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7-11-27 (월) 10:08 조회 : 501
설교일 : 2017/11/26
설교자 : 안명훈 목사
본문말씀 : 고후 3:1-3


 “너희는...

(9) “너희는 나의 편지다!

(고린도후서 3:1-3)

  

오늘은 “너희는 ... !”이란 말로 시작되는 제목들의 연속설교 중에서 아홉 번째로 너희는 나의 편지다!라는 제목의 설교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것입니다. 그 편지의 발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수신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고, 그 편지의 내용은 성도들의 심령과 삶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보내진 편지는 수신자에게 반드시 전달되며 읽혀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심령과 삶에 기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는 반드시 읽혀진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반드시 읽혀집니다. 부모들의 모든 말과 행동이 자녀들에게 다 읽혀집니다. 성도들의 모든 말과 행동이 직장과 일터에서 사람들에게 읽혀집니다. 사람들이 안 읽는 것 같지만 다 읽고 있습니다. “낮에 한 말은 새가 듣고, 밤에 한 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들의 모든 삶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누군가에 의하여 읽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읽혀지면 어때? 남들의 시선과 이야기에 신경 쓸 필요가 뭐 있나? 그리고 필요하다면 내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하여 내가 책임을 지면되지!”라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나 혼자 책임지면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잘못된 말과 행동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편지의 내용을 읽고 그 내용이 잘못된 것이면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을 비난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삶의 내용이 엉망이면 그 편지를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지,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돼서야 되겠습니까?

 

본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심령과 삶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만한 귀한 내용들을 쓰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의 삶과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록하여 주신 내용들을 제대로 읽었다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 저 사람의 삶을 보니, 정말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구나!

. 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니, 나도 예수를 믿어야겠다!

.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저 사람을 보니, 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겠구나!

. 저 사람의 축복된 삶을 보니, 하나님은 정말로 축복의 하나님이시구나!

 

요셉의 삶이 축복의 하나님을 남들에게 전하는 삶이었다고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요셉은 그 주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그 주인은,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주인은, 요셉이 눈에 들어서, 그를 심복으로 삼고, 집안 일과 재산을 모두 요셉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였다. (39:2-4)

 

그런데 그 귀한 편지의 내용들이 우리들의 욕심과 더러운 인간의 본성들로 인하여 지워지고 왜곡되고 변질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읽혀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거울에 비유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울이 깨끗하면 본래의 얼굴을 잘 반영합니다. 그러나 거울에 때가 많이 묻고 더러운 것들로 덥혀있다면 본래의 얼굴이 아무리 잘 생겼어도 그 본래의 모습을 잘 반영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의 삶에 죄로 인하여 더러워진 부분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님의 얼굴이 제대로 세상 사람들에게 잘 반영되지 않을 때가 많다는 말입니다.

 

어느 학생이 시험을 보다가 어느 질문에 대한 정답이 생각나지 않아서 옆에 있는 학생의 답안지를 슬쩍 보았다고 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은 “니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답을 적은 종이 부분에 본래 점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 “니”가 “나”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옆의 학생이 베껴 쓸 때에 무엇이라고 적었겠습니까? 우리들의 삶에 죄로 인하여 검은 점들이 많이 생기면 자랑스러운 철학자 “니체”의 이름도 부끄러운 “나체”로 읽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거울이 일그러져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래 모습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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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거울은 우리들의 삐뚤어진 마음입니다.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찬 굽어진 마음입니다. 의심으로 가득 찬 마음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심령에 아름다운 것들과 진리의 말들을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귀한 내용들을 우리들의 심령과 삶에 잘 보존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욕심에 가려서 그 귀한 내용들이 남들에게 잘 읽히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더러운 본성들과 죄악들로 인하여 본래의 귀한 내용들이 왜곡되고 변질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들의 삶이 깨끗하지 못하거나, 죄로 인하여 구부러지고 왜곡되었다면 우리들을 통하여 비춰지는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제대로 반사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성경을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은 비교적 성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합니다. 기도가 부족합니까? 은혜 체험이 부적합니까? 아니면 뜨거운 열정이 부족합니까? 아닙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만큼 기도를 열심히 하고, 깊은 은혜 체험을 사모하고, 뜨거운 열정을 가진 성도들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식당을 세우지만, 한국 사람들은 세계 어디를 가든지 교회를 세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심령과 삶 속에 친히 써 주신 그 편지의 내용이 우리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읽혀지지 않고, 또 본래의 의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그리스도의 편지”이니 당연히 우리들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로 가득 차야 하는데,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가 편지의 주된 내용이 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 찬 삶이란 무엇입니까? 자신이 살아 온 날들이 모두 자기의 노력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신에 대한 자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기가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업적들. 자기가 모은 재산. 자기와 관계된 식구들 자랑. 자기의 지식, 경험, 재산, 인맥...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시기를 원하시는 이야기는 그러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그 내용이 우리들의 심령과 삶에 씌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들의 이야기도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주인이 되셔서 우리들의 삶에 행해주신 놀라운 은혜의 이야기들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구원하여 주셨는가?

.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영생은 어떠한 것인가?

. 구원 받은 후에 나의 삶에는 어떠한 기쁨과 축복이 있었는가?

. 하나님은 나의 삶에 어떠한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는가?

.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어때야 하는가?

 

하나님은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시고 싶어 하신다는 말입니다.

 

언젠가 제가 헨리 나우웬(Henri Nouwen) 신부가 쓴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란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의 본래 영어 제목은 “The Living Reminde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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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삶을 생각나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헨리 나우웬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193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고, 1957년 예수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으며, 그 뒤 다시 6년간 심리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2년간 신학과 심리학을 통합하여 연구하였고, 마침내 삼십대에 노틀담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1971년부터는 예일 대학 신학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명문대학 교수직을 다 내려놓고, 1981년 중대한 결심을 하고 강단을 떠나 페루의 빈민가로 가서 민중들과 함께하는 삶을 시작합니다. 그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에서 강의를 했지만 그곳에서도 영혼의 안식을 느끼지 못합니다. 마침내 그는 토론토에 있는 정신지체 장애인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Daybreak)에서 19969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헌신적인 삶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인간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고귀한 삶은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한번 곰곰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읽혀지고 있습니까? 남들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섬기는 겸손한 나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이 남들에게 읽혀지고 있습니까? 나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까? 아니면 오히려 그분의 영광을 가리는 삶입니까?

 

우리들의 교회는 또 어떠합니까? 우리 교회는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역 (전도, 봉사, 선교, 구제)들은 세상을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까?

 

헨리 나우웬과 같은 삶을 살아야만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들의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조금이라도 생각나게 하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 모두의 삶이 진실된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모든 사역을 통하여 세상을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잘 읽혀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수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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